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가정 가치 사라진 안방 멜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영화가 제작된다는 인도의 흥행성적 1위는 멜로물이다.

수 백 가지의 언어와 수십 종의 종교, 수많은 민족이 철저한 계급의 벽을 쌓고 사는 사회에서 '그저 그런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지니는 보편성과 대중성이 관객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장르가 멜로물인 탓이다.

밀린 집세를 독촉하는 집주인이 어여쁜 딸을 집세 대신 요구하여 행복한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거나 사랑하는 젊은 연인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인 멜로드라마. 목가적 평안을 되찾는 해피엔드로 인기가 대단했지만 비평가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비극의 열등한 형태'로 받아들였다.

비극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왕과 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다루는 반면에 멜로드라마는 '역사적으로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귀족적 가치와 사회질서를 강조하여 모든 계층에 호소력이 있지만 멜로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을 특별나게 만드는 가치는 중산층이 전부인 탓이다.

요즈음 안방극장에는 정통멜로드라마의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감상적 눈물 짜내기 신파조도 그대로이고, 선과 악의 갈등을 묘사하여 시청자들에게 희생자를 응원하도록 부추기는 것도 한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가지,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도덕적 설교가 보이지 않는다.

멜로물의 기본골격인 가정은 파괴되고 남녀만 남아있다.

SBS TV '태양의 남쪽'에서 유부녀는 혼자 나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를 재워주고 여행길에 동행한다.

남편과의 가정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 남자만을 기다린다.

드라마 '첫사랑'의 여자는 십 년 이상을 사랑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말고도 좋아하는 동료가 따로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도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재혼을 바라는 동료와도 어정쩡한 사이다.

미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첫 이미지 컷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우리는 '남편말고 애인이 필요해'로 본격화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싶다.

대경대학 방송연예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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