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농사 16년동안 한번도 멀쩡한 사과를 먹어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목이 말라 상처없는 사과를 골라 벌써 두개나 먹었지요". 26일 영양군 석보면 주남리에서 만난 김춘섭(67) 할아버지는 사과밭인지 자갈밭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든 밭에 앉아 사과를 껍질채 버적버적 깨물어 먹고 있었다.
나이 51세 때 아내와 함께 한번 잘 살아보자며 2천500만원 전재산을 털어 5천평짜리 밭을 구입해 사과나무 600그루를 심고 자식처럼 가꿨다.
지난해 병든 사과나무 250그루를 베내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올해는 태풍 매미가 330그루를 몽땅 쓸어가 버렸다.
부러지거나 꺾인 것이 아니라 아예 뿌리째 뽑혀 흔적조차 없어졌다.
남은 20그루도 온통 부러진 상처 투성이다.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친 이튿날 새벽 사과밭으로 달려왔을 때 태풍 루사 때도 멀쩡했던 과수원이 깡그리 사라진 현실 앞에 한동안 헛웃음만 나왔다.
김 할아버지는 농사라곤 사과나무 600그루뿐이지만 4남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보낸 것이 그저 대단한 일이 아니었느냐며 반문했다.
올해는 출가 후 아직도 객지에서 집 마련을 못한 두 아들에게 사과를 팔아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 했는데 이같은 꿈도 이젠 모두 사라졌다며 허탈해했다.
부인 손분남(66)씨는 날이 새면 달려와 살다시피 했던 사과밭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밭 근처에도 오기 싫다며 인근 고춧가루공장에서 애써 허망한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비닐하우스에 보관하던 경운기와 농기계도 모두 뻘 속에 묻혀버렸다며 그렇지만 절대 포기않고 또다시 죽기 살기로 농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김 할아버지는 참았던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제발 튼튼한 제방 좀 지어달라고 말 좀 해 주구려'.
영양.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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