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보! 케냐(상)-마사이족 아이들

비행기가 착륙을 시작하면서 여명의 창 바깥으로 거대한 주홍빛 띠가 보인다.

먼데서 큰 불이라도 난 것같은 오로라의 현란함과는 달리 고요하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당근빛깔의 띠. 망망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프리카의 일출이다.

케냐 배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테마음악인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의 선율이 들리는 듯 하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좀모 케냐타(Jommo Kenyatta) 국제공항. 어디를 둘러봐도 검은 얼굴들, 귀에 와닿는 낯선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땅임을 실감케 한다.

세계의 빈곤지역을 찾아 나눔의 손길을 펴는 국제NGO인 월드 비전(World Vision)의 후원 사업장들을 돌아보는 이번 방문단에는 월드비전 코리아의 대구지부(지부장 곽정웅)와 경기지부(지부장 최성균) 관계자.후원자 등 모두 9명이 참가했다.

10월의 나이로비는 우리나라의 약간 더운 초가을 날씨 정도. 적도 남쪽 약 160km 지점에 해발 1천675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대규모 국제대회가 자주 열리는 인터내셔널 시티면서도 형형색색의 키 큰 꽃나무들과 우거진 숲들이 어우러진 녹색의 장원(莊園)이기도 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한 뒤 첫 방문지로 나이로비 남서쪽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카지아도주(州)의 루다리악(Loodariak)으로 갔다.

나무 윗부분이 납작하게 옆으로 뻗는 아케시아 나무들이 많은 반사막 지역이다.

용감한 전사(戰士)로 널리 알려진 마사이(Masai)족 거주지역이기도 하다.

월드 비전 케냐측 관계자가 식수사업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한국의 후원자들이 보낸 3만3천여 달러의 후원금으로 지난 2001년 9월 지하 80m 깊이로 관정(管井)을 팠다고 했다.

사막지역 어디나 그렇듯 이 곳 역시 물이 몹시 귀해서 과거엔 샘이 있는 곳까지 몇 십리씩 걸어가서 물동이로 길어와야만 했다고 한다.

학교의 학생들은 각자 마실 물을 갖고 다녀야 했으며, 비만 오면 각 가정에서 온 식구가 빗물을 받느라 학교문을 임시로 닫아야할 정도였다 한다.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각 가정까지 수도관이 연결돼 있지는 않지만 물탱크를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다.

현지인 다니엘 덴나이(35)씨는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샘을 갖게돼 주민 2천 여명이 더 이상 물 긷는 일로 고생하지 않게 됐지요"라며 고마워했다.

요즘은 곳곳에 물탱크들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한다.

현재 2만ℓ를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 2개를 만들고 있는데 하나는 보건소, 또 하나는 고지대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식수사업장 건너편의 올루세우스(Olooseos) 초등학교. 흙벽돌로 지은 두 채의 교사에 대여섯개의 교실이 전부이다.

창문이 없어 어둑선한 교실 안엔 후줄근한 차림새의 아이들이 맨흙바닥의 낡아빠진 책상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릴 쳐다본다.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엘리 무쿠루(49)교장은 1~8학년까지의 초등 및 유치원 과정이 있는 이 학교의 재학생이 500여 명이며, 교사는 11명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중 절반에 가까운 215명이 호주 등지의 월드비전 결연아동들이라고 한다.

후원자들이 매월 우리돈으로 2만원씩 낸 후원금은 아이들의 스쿨 유니폼과 학용품 구입, 책걸상 등 비품 마련, 건물수리, 아픈 학생들의 치료비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남자아이들은 군청색 스웨터에 바지, 여자아이들은 군청색 스웨터에 붉은 체크무늬 치마. 하나같이 낡고 꾀죄죄하다.

'Reds'글자가 선명한 월드컵 티셔츠와 학용품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월드컵 셔츠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무척이나 기쁜 듯 서둘러 그 자리에서 입고는 뭐가 우스운지 깔깔거린다.

갑자기 그중 한 아이가 "에에이~"하며 선창을 하자 나머지 아이들도 몸을 흔들면서 장단맞춰 박수치며 합창을 하는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몸에 밴 그들의 리듬감각이 놀랍기만 하다.

가져간 축구공 중 하나를 공기주입기로 빵빵하게 부풀리는 시범을 보인 뒤 나머지는 교장선생님더러 직접 해보라고 하니 모두들 신기한 듯 구경한다.

몇몇 남자 아이들은 망아지처럼 공을 차며 벌판으로 내달려가고 있다.

좁은 운동장, 그것도 공부에 찌들려 텅 비어가는 한국 학교들의 운동장들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이어 찾아간 곳 역시 월드 비전이 후원하는 마사이족의 엔케레얀 (Enkereyian)초등학교. 월드컵 셔츠와 학용품, 축구공 등을 안겨주었더니 그 화답인듯 원색 케이프를 두르고 긴 지팡이를 든 남자아이들과 울긋불긋한 차림의 여자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몸을 앞뒤로 흔들거리다가 풀쩍풀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마사이 전통춤 마냐따(Manyatta)를 춰보인다.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가뭄이 들면 풀을 따라 이동하느라 아이들이 학교를 제대로 못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은 정착하는 가정들이 늘어나 공부를 계속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월드비전의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학교 뒤로는 마사이 마을. 눈에 보이는 집들은 10여채에 불과하다.

학교의 아이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알고보니 수㎞씩 걸어 등하교하는 아이들이 많다한다.

지난 60, 70년대 우리네 두메 아이들이 그러했듯이.집들은 다 쓰러져가는 움막같다.

얼기설기 엮은 나무뼈대 위에 소똥을 바른 집이다.

소똥이 오래되어 떨어지면 땔감으로 사용한다.

한 여인이 자기 집으로 손을 이끈다.

한 사람 겨우 드나들만한 좁은 통로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온통 캄캄하다.

창문도 없고 전깃불도 없으니 그럴밖에. 한참을 들여다봐도 눈에 잡히는 것이 없다.

게다가 안에서 불을 피우는 지 연기가 밀려나와 눈이 맵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산단말인가. 하지만 마사이들은 이토록 좁고 캄캄한 소똥집에서 먹고 자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아간다.

하루도 살기 힘들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각일뿐 그들에겐 자연에 순응하는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편하고 익숙한 모양이다.

월드 비전 케냐 직원인 찰스도 알고보니 마사이족 출신. 의대를 나와 도시에서 6년간 의사생활도 했던 인텔리이지만 소똥에 관한한은 어쩔 수 없는 마사이인가보다.

"난 소똥 냄새가 좋아요. 향수를 맡으면 오히려 머리가 아파와요".

현란한 원색의 마사이 전통복 차림의 한 부부와 할머니들이 작은 구슬을 끼워만든 목걸이와 귀고리, 소가죽으로 대충 만든 가방을 들고와서 애원하듯 내민다.

궁핍함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그들의 얼굴 위에 마사이의 옛명성이 오버랩됨은 왜일까.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잠보(jambo)는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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