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

옛날 옛적 어느 산 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어. 이 호랑이는 몸집도 크고 힘도 아주 세어서 산 속에서 당해낼 짐승이 없었지. 곰이고 멧돼지고 늑대고 살쾡이고, 제 딴엔 힘깨나 쓴다는 짐승들도 이 호랑이를 만나면 끽 소리 못하고 그냥 슬금슬금 도망가기 바빠. 그러니까 이 호랑이는 아주 기가 오를 대로 올라서, 세상에 저보다 힘센 짐승은 없다고 잔뜩 뻐기면서 살았지.

하루는 이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갔어. 마침 추운 겨울날인데, 저 멀리서 황소 한 마리가 나무 실은 발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거든. 옆에는 농부가 고삐를 잡고 걸어오고 말이야. 그런데 발구에 나무를 어찌나 많이 실었던지, 멀리서 보니 그게 아주 산더미 만해. 그걸 보고 호랑이가 깜짝 놀랐어.

"아니 저렇게 큰짐을 끌고 다니다니, 저 황소는 보통 힘센 놈이 아니로군".

그렇지만 아직까지 저보다 힘센 짐승은 본 적이 없는지라 짐짓 큰소리를 쳤어.

"흥, 그렇지만 나한테야 어림없지. 나는 저것보다 더 큰짐도 거뜬히 끌 수 있어. 암, 그렇고말고".

이 때 소를 끌고 가던 농부가 소를 세우고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소가 힘들겠다.

발구를 여기 세워 놨다가 내일 와서 가져가야지".하고, 그 자리에 발구를 세워 놓고 황소만 끌고 가는 거야.

"옳지. 이따가 어두워지면 다시 와서 내가 저걸 한번 끌어 봐야지".

호랑이는 황소가 끄는 것을 제가 못 끌 리 없다고 생각하고, 밤이 되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 발구 세워 놓은 데로 갔어. 가서 발구를 힘껏 끌어당겨 봤지.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발구가 옴짝달싹을 안 하네. 낑낑거리며 아무리 용을 써도 한 뼘도 안 움직여. 왜 그럴까? 응,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차렸네. 날씨가 추워서 발구가 땅에 얼어붙었으니까 그렇지.

그것도 모르고 호랑이는 밤새도록 낑낑거리며 헛고생을 하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남이 볼까 겁나서 그냥 산 속으로 도망쳤어. 그러고도 도무지 믿어지지를 않는 거야.

"아니, 그 미련스럽게 생긴 황소가 나보다 더 힘이 세다니 그럴 리가 있나. 어제는 내가 뭘 잘못 본 거야. 내가 못 끄는 걸 그따위 황소가 끌 리 없지. 오늘은 정말 똑똑히 지켜볼 테다".

이렇게 생각하고 숲 속에 숨어서 가만히 지켜봤어. 해가 뜨고 한참을 지나 언 땅이 녹을 때쯤 되니까, 어제 그 황소가 농부에게 고삐를 잡힌 채 터벅터벅 걸어오거든.

"흥, 내가 못 끈 것을 너는 끄는가 보자".

숨을 죽이고 지켜봤지. 그런데, 황소는 뭐 힘도 안 들이고 발구를 그냥 술술 끌고 가는 거야. 밤새 얼었던 얼음이 녹아서 발구가 땅에서 떨어졌으니까 그렇지.

그걸 보고 이 호랑이가 그만 기가 팍 죽어서,

"아이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센 줄 알았더니 황소가 나보다 더 힘이 세구나"하고, 그 다음부터는 뻐기지도 않고 얌전하게 살더래.

*발구: 마소가 끄는 썰매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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