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양 소설속의 性이야기

'서양 문학 속에서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사랑 때문에 자살한 '베르테르'에서 성도착적 연쇄 살인범 '패트릭 베이트먼'('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200여년에 걸쳐 서양 문학의 에로스의 변천사를 다룬 책이 출간돼 주목을 끌고 있다.

'문학 속의 에로스'(디터 벨레스호프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는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금기시되고, 때로는 그 존재를 인정받기도 했던 에로스가 서양 문학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변천돼 왔는가를 보여준다.

또 사회적 분위기에 둘러싸인 한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꺾이는지를 작가의 개인사와 시대적 배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도덕의 '벽'에 막힌 사랑=독일의 문호 괴테는 1772년에 샤를로테란 한 여인을 사모하게 됐다.

그녀가 이미 약혼했다는 사실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괴테는 결국 도덕과 현실에 따라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그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란 여인을 사랑하면서부터 느끼는 고뇌와 일치한다.

더욱이 그의 학우가 상관의 부인에게 접근했다 거절당한 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살한 사건은 괴테가 이 소설을 쓰는 직접적인 자극제가 됐다.

여기에 성(性)을 '도덕과 사랑'이라는 관념으로 포장하도록 했던 18세기 시민문화도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주인공에 오버랩된 작가의 의식=검고 붉은 룰렛의 베팅판에서 제목을 빌려왔다는 소설 '적과 흑'. 작가 스탕달은 주인공 쥘리엥 소렐을 사랑과 섹스를 밑천으로 신분상승의 야망을 꿈꾼 인물로 묘사했다.

그렇지만 소렐의 행적은 귀족집안 유부녀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출세를 꿈꾼 작가 스탕달의 인생과 궤적을 같이한다고 저자는 갈파하고 있다.

괴테가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녹여낸 반면 무명의 설움에 시달렸던 작가 드 라클로는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을 유혹의 화신으로 등장시켰다.

'위험한 관계'(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원작)에서 주인공 발몽은 베르테르와 정반대로 남성적인 매력으로 여러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다변화된 에로스=프루스트와 토머스 만의 작품에 나타나는 동성애적 성향, 기묘한 변덕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내와 불화를 겪었던 톨스토이, 성(性)이 돈처럼 시장의 법칙을 따르게 된 세상에서 일부 남자들이 모든 여자를 차지해 버렸다며 집안으로 숨어버린 우엘백('투쟁 영역의 확장' '소립자'의 저자) 등 유명 작가들의 개인사에 얽힌 성적인 문제들도 들춰지고 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지금 나는 그녀가 일주일 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원히 안녕'"이라고 썼던 장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동기를 감추고 거리두기로 일관하는 사랑 싸움의 묘사를 통해 가학-피학성의 다층적이고 복잡적인 형태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D.H. 로렌스와 헨리 밀러의 소설에서 비로소 성행위의 직접 묘사가 이뤄지면서 19세기의 금기가 깨졌다.

또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이르면 직접적 묘사를 뛰어넘어 성적 교류에 스며있는 슬픔과 절망을 보게 된다.

스와핑 등 미국 중상류층의 일상을 전하는 업다이크의 '커플스' 등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이고 병적인 성의 모습들이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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