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락 지역경제 탈출 해법 찾자-(3)시민사회단체 역할

우리 지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지역 주민이 유독 게으른 탓에 생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새해 첫 해돋이 구경길에 나선 인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 보려는 의욕이 무척 강한 우리 지역민이다.

◆지역사회 투자 희소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민 전체의 경제 형편이 나아진다는 희망은 왜 보이지 않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으로서, 우리 지역 사회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투자가 이루어질 만한 희소가치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찾고 싶다.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 살고 있는데, 하나의 상품이 지닌 시장적 가치는 희소성에서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 지역민들이 얼마만큼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인식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가 하는 그 정도에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투자 매력도가 달려 있다고 본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외지 투자가의 입장에서, 우리 지역에 기업을 하고 싶은 매력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만 한다.

◆선진국과 경쟁할 생활문화

근대 서구 자본주의의 태동을 금욕정신과 소명의식이라는 종교윤리로부터 찾는 것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지역사회는 선진국과 경쟁할 만한 경제체제를 견인할 수 있는 건전한 생활문화가 정립되지 못한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 지역은 이른바 '먹고' '마시고' '자고' '씻는' 향락적 소비문화에 바탕을 둔 업체가 점증하는 추세이다.

자고 나면 하나둘씩 새로 생긴 건물은 음식점, 술집, 모텔, 사우나 시설물로서 '밀실문화'의 온상이라고 이름짓고 싶다.

결국 우리 지역민의 호주머니를 탐내는 것은 희소가치에 기반을 둔 경제가 아닌 것이다.

남들이 다하는 것을 그저 따라가고 있는, 옛 표현을 빌리면, '친구 따라 장보러 가는 짓'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생활개혁 이끌었나?

전통적으로 한 사회의 정신문화 창달 기능을 수행해온 제도는 종교기관과 교육기관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시민사회단체가 시민의식 개혁과 생활문화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향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에서 이러한 기관과 단체들이 그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전체 문제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해당 조직체의 성장만을 도모해온 것은 아닌지 냉정한 반성이 요구된다.

여태까지 '중앙본부'의 교의와 지침에 따라서 지역문제를 이해하고 접근해온 것은 아닌지, 심지어 현란한 이념과 산뜻한 노선에 부합하지 않으면 지역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부인해온 것은 아닌지, 이제는 솔직하게 되짚어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체제저항적인 활동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문제나 민족의 자주독립을 해치는 문제와 같은 큰 사안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특정 현안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일반 시민으로부터의 관심과 지원은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는 숲과 나무의 상관성처럼, 숲에 집착하면 나무를 보지 못하고, 나무에 얽매이면 숲을 놓치는 격이다.

아무튼 지금껏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동원하고자 했던 '광장문화'의 형태가 시위, 농성, 궐기대회와 같이 체제저항적 성격을 띠면서 우리 사회의 주변문화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사후약방문처럼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한 대응형태로 시민운동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진보를 내세우지만 과거지사에 연연한다는 인상마저 씻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생산성 향상 위한 축제

기왕에 과거지사를 전범으로 삼는다면, 우리 지역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대안이 다른 지역, 다른 나라로 확산된 예를 현대사회의 제도적 틀로 담아내는 것이 나을 성싶다.

예컨대 원효와 퇴계, 그리고 수운의 사상적 영향력을 보더라도, 세계의 중심이 우리 지역임을 표방하는 데 손색이 없다.

요즘 지방분권과 지역혁신 운동 역시 우리 지역이 그 산실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미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일궈냈지 않은가. 우리 지역민 전체가 자축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기념일만 해도 그렇다.

불행한 사건을 잊지 않고 교훈 삼으려는 기념일이나 또한 국가가 지정한 기념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지역 주민전체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기념일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역마다 개최하는 갖가지 축제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절기에 맞춰 농사일을 도모하는 데 축제가 활용된 측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시대요구에 맞는 기념 행사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축제가 새로운 생활문화로 등장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안다.

범시민적인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 출범일자가 언제 될는지 모르나, 그 날을 우리 지역 사회의 미래지향적인 기념일로 선포하는 첫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주민 비전만들기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은 분권혁신운동의 구체적인 실천의 한 갈래일 수 있다.

예전에 지역발전은 지역엘리트 중심으로 중앙으로부터의 특혜와 할당에 의존하여 추진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주민들 스스로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대한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 계획수립과 실행추진에 이르기까지 적극 참여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아야 지역발전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한정된 인적 자원과 제한된 재정 지원으로써 저비용 고효율 체제로 운용되기 위한 네트워킹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것이다.

이를 위해 밀실문화에 기반을 둔 지역경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광장문화를 대안적 주류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오늘날 시민사회단체가 우리 지역의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앞장서서 노력해야 할 일이다.

바람직한 광장문화의 예는 포럼, 심포지엄, 세미나 등과 같은 각종 토론회와 연구발표회, 그리고 장학사업과 평생교육프로그램의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광장문화의 창달은 선진국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주로 시민사회단체가 선도해온 셈이다.

◆경제 살리려면 광장문화 중요

경제 살리기 운동에서 광장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광장문화가 교육, 관광, 축제, 스포츠, 레저, 건강과 같은 투자적 소비문화를 촉진함으로써 그 자체가 재창조(레크리에이션) 활동이자 생산성 향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며, 아울러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영역으로서 관련 산업 부문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희소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유형의 생활문화의 지향성을 지녔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민들이 모두 다 맑은 공기를 원하면 맑은 공기의 희소가치가 상승한다.

낙동강 페놀오염 사태 이후 생수의 가치가 급상승한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더라고 쉽게 수긍할 수 있지 않은가. 같은 이치로서 우리 지역민들이 광장문화에 기반을 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과거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으로 인식하고 그 향유 정도에 따라 자신의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에, 우리 지역 사회는 광장문화와 관련된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며, 이것은 곧 새로운 지역 경제체제의 도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제 영역과 산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잘 살려면 함께 노력해야

마지막으로 아무 기관에도 속하지 않고 어느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한테 감히 묻고 싶다.

지금 세상살이가 혼자만의 힘으로 별 탈 없이 꾸려갈 수 있는지를. 게다가 지역 경제가 계속 마땅찮으면 앞으로 자기 자신은 몰라도 자녀 세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되지 않는가를. 시민운동은 유별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자기에게 주어진 고민을 풀기 위해 함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자원봉사활동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자신의 문제보다는 남들의 문제를 먼저 관심 갖고 애쓰다보면 자신의 고민거리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남을 돕는 일이 오히려 자신에게 축복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사실을. 갑신년 새해라도 그냥 새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뜻깊은 새해이다.

이러한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지역민들의 꿈은 무엇인가. 우리 지역이 세계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는 꿈은 그냥 꿈에 그치고 말텐가. 설령 혼자 잘 살아보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홀로가 아니라 다함께 노력하는 길을 찾아보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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