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에 조류독감, 돼지콜레라까지 기승을 부려 안심하고 먹을거리가 없다고 사람들이 아우성을 터뜨리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식생활이 위협받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속도와 효율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인간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소를 빨리 키우려 풀이 아닌 동물성 사료를 먹인 탓에 광우병이란 인재(人災)를 불러왔고, 각종 성장호르몬과 농약에 먹을거리가 오염되고 말았다.
현대인들의 식생활을 대표하는 패스트 푸드(Fast Food)는 속도가 빠르고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는 '두려운 존재'다.
"패스트 푸드란 단지 음식이 만들어지고 먹는 데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활도 빠르다는 것을 이야기하지요. 즉 '패스트 라이프'인 셈입니다". 한국계 일본인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 국제학부 교수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씨의 말이다.
이처럼 패스트 푸드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자 음식에서 속도를 완화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 푸드(slow-food) 운동이다.
슬로 푸드 운동은 1986년 로마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이를 문제 삼아 생겨났다.
지금은 국제적인 운동이 되어 현재 전 세계 50여 개 국가에 7만 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패스트 푸드의 제국인 미국에서 슬로푸드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고 있다.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의 폐해에 대한 인식에서 촉발했지만 이제는 패스트 푸드에 대한 반작용 차원을 넘어 사람들의 식생활에 '혁명'을 일으키고, 인생을 통째 바꾸는데 기여하고 있다.
시나브로 슬로 푸드는 사람들의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예로 천연재료를 이용한 사찰음식과 채식, 전통방식으로 2, 3년간 오랫동안 숙성시킨 각종 장류의 인기를 들 수 있다.
예전처럼 직접 집에서 장을 담가먹거나 깨끗한 채소를 길러 먹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26년전 부터 사찰음식에 심취한 불은사 주지 무공 스님은 "요즘에는 음식이 너무나 빨리 나오는 탓에 사람들의 성격이 급하고 강해졌다"며 사찰음식을 최고의 슬로 푸드로 꼽았다.
"사찰음식은 소화가 잘되니 먹고나면 속이 편안하고 가볍지요. 양념맛을 절제하고 음식고유의 맛을 살려내는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사찰음식이 선을 보이는 봄, 가을 불은사 산사음악회에는 300여명이 찾을 정도다.
"사찰음식의 큰 뜻은 사람이 음식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는데 음식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쌍리씨의 '청매실농원' 매실된장과 고추장은 판매량이 해마다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으며, 매년 6월 열리는 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에는 남성들도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돈연 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씨가 운영하는 강원 정선의 '메주와 첼리스트'는 14년 전 장독대 몇 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3천여개의 된장독을 자랑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외식문화에도 슬로 푸드 바람이 불어 최근에는 기름진 서구음식 대신 한정식집이나 보리밥집에 대한 창업 문의가 많이 늘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슬로 푸드가 인간의 삶을 '슬로 라이프'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슬로 푸드는 우리의 인생을 느리게 만들어주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피에르 쌍소는 느림을 포도주라 정의했다.
"숙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느림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삶입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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