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문고로 책 빌리러 오세요".
6일 오후 2시 대구 수성구 두산동 수성 동아아파트. 경로당 2층에 자리잡은 작은 도서관에선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신간서적을 고르는 아이와 주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동화책, 소설책, 수필집부터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건강 관련 서적까지….
나란히 꼽힌 책들 앞에서 아이들은 '제 책'을 고르느라 눈에 잔뜩 힘을 준다.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리던 정민(12.여.초교4년)이의 손이 딱 멈췄다.
방학 전부터 읽고 싶었던 '노빈손의 아마촌 어드밴처'다.
마음이 뿌듯한듯 책을 소중하게 안고 나간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간판을 걸었으니 20년은 족히 됐을 거예요". 동아문고는 이곳 아파트 주민들이 자비를 털어 운영하는 '자립문고'. 김애숙(46.여.부녀회장)씨는 이 작은 도서관의 '관장님'이다.
선배 관장들처럼 무보수로 일한 지 2년. 오랜만에 새 책을 보따리로 받은 터라 오늘 관장님의 기분이 여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 오후 8~9시에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을 내보낸다.
"도서관 문 열었어요. 책 빌려 가세요". 엄마들은 설거지를 멈추고 한 달음에 도서관으로 달려온다.
아이들도 저번에 빌린 책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따라 나선다.
조용하던 아파트에는 기분 좋은 소란이 일고, 도서관 안에도 훈기가 가득 찬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던 아이들도 책을 펴든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사고력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김씨는 말을 보탠다.
관장인 엄마를 따라 도서관을 다니던 영훈(14.중2년)이는 수성구청에서 주최하는 독후감상문대회에서 수상까지 했을 정도다.
사실 도서관이라지만 으리으리한 공공 도서관에 비한다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철제 앵글로 짜 맞춘 책장에는 '철 지난' 책도 많다.
월 5만원씩 모이는 운영비로는 낱권으로 책 몇 권 사면 그뿐이니까. 가끔 구청에서 무료 책 교환 행사라도 있은 날이면 새 책을 찾는 손님들이 밀려든다.
이런 날이면 아파트 게시판의 '신간 목록'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동아문고는 300가구나 되는 이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도 톡톡히 한다.
중.고교 배정이 한창인 요즘엔 누구네 아이가 집 앞의 학교를 놔두고 멀리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주요 화제다.
"아파트가 조만간 재건축된다지만, 동아문고는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책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저렇게나 많은 걸요". 도서 대출장부에 새 책 제목을 적는 김 관장의 손이 즐거워 보였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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