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교육비 경감대책-분석과 전망

교육부가 17일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초등교육에서부터 대학입시에 이르기까지 교육계 현안 대부분을 건드리면서 금세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교육부가 일 년 가까이 준비해 온 데다 사교육비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에서 상당한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안 하나하나에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어서 계획대로 추진되기에는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다.

특히 현 안병영 부총리가 교육부장관이던 지난 97년 제시한 유사한 방안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던 2002학년도 입시제도 개선안의 유명무실화 등 가까운 사례에 비춰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공교육 정상화를 장기 과제로 두고 눈앞의 사교육비 수요를 줄이기 위해 급성 처방을 내렸다는 점이다.

▲교육방송 활용=교육방송에서 수능 강의를 하고 수능 문제가 그 내용 안에서 출제된다면 이론상 학생들이 학원을 찾거나 과외를 할 필요가 없다.

EBS는 기존 강사진 외에 서울 강남 지역 학원의 스타 강사를 대거 영입해 강의를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이나 학부모로서는 서울이든 지방이든 안방에서 원하는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강의 수준. 일방향성을 지닌 TV 강의의 특성상 학력 수준이 제각기 다른 학생들에게 얼마나 만족을 줄 수 있느냐가 의문스러운 것이다.

예를 들어 강사들이 서울의 중위권 고교생 수준에 맞춰 강의한다면 서울이나 광역시, 비평준화지역 우수 고교의 상위권 학생들에겐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지역 중하위권 학생들은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성채널이나 인터넷을 이용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책 없이 추진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신종 과외 등장도 예상된다.

사교육 수요를 막기 위해 활용되는 교육방송이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과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학원가에서는 실제로 교육방송 내용이 수능 출제에 상당 부분 활용된다는 사실만 확실해지면 즉시 교육방송 관련 예습.복습 강의를 하는 학원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중.하위권 학생들을 모아놓고 교육방송 녹화 비디오를 틀어가며 다시 설명하는 강의는 상당한 수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내신 위주 대입 제도=교육부가 내신 위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수능시험 열기를 식히고 학교 공부와 시험에 주력하도록 함으로써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내신의 공정성이다

지금처럼 광역시, 중소도시, 농어촌 등 지역별 학력 격차가 엄연하고 특목고나 비평준화지역 상위권 고교의 경우 우수 학생이 몰려 있는 상황이라면 학교별 내신 성적은 결코 입시를 좌우할 수 있는 요소가 못된다.

교육부는 8월까지 이를 뜯어고치겠다고 했지만 언제쯤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학교간 차이를 정확하게 가리고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전국적인 정밀 학력평가를 시행하는 방안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이른바 고교 서열화를 공식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만 평준화지 우수 고교에 입학하기 위한 중학생들의 과열 현상, 추첨식 학교 배정에 대한 불만 폭증 등 평준화 해제 못지않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교육부가 학교 단위 시험을 위해 방대한 문제은행을 제공하는 방안도 잡음이 적잖을 것이다.

공룡이 돼 버린 사교육이 좋은 먹잇감을 그대로 둘 리 없고 출제진의 비밀 유지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또 시.도 교육청을 통해 학교 단위 시험을 일일이 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교육부가 평가 방안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사교육 팽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평준화 지역의 연합고사가 없어지고 내신으로 고교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가 도입된 후 각 중학교 근처 중.소 학원들이 학교 시험 문제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면서 엄청난 시장을 형성한 것만 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대학들이 고교 내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교육부가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믿을 수도 없는 내신을 아무리 중시하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대학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 자체 전형이 당락의 열쇠가 될 것이고 이는 사교육 팽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열반과 보충수업=수준별 이동수업, 이른바 우열반 편성은 바람직하긴 하지만 현실 여건이 얼마나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고교에는 7차 교육과정 상의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실이나 여유 교실도 변변히 없는 상황이다.

수준별 교재도 마땅찮다.

반별 담당 교사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두고 교사간 갈등, 학생들의 불만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내신을 중시할 경우 가르치기는 수준별로 가르치고 시험은 같은 문제로 봐야 하는 불합리도 발생한다.

보충수업의 경우 예상되는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부는 과외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공염불이 될 소지가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준별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도록 한다고 하지만 이는 학교만큼 시장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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