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일대에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이내 불길은 190여명의 대구시민들을 삼켰고, 살아남은 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고 이후 많은 온정의 손길들이 참사현장에 남겨진 유가족들을 찾아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
기독교 단체인 대구지하철선교회도 그런 손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하철선교회에 지하철 참사가 주는 의미는 다른 자원봉사 단체들과는 달랐다.
대구지하철 1호선 32개 역에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봉사 및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32개 교회 연합단체인 그들에게 참사현장은 선교의 공간이었고, 희생자들은 섬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중앙로역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 서성로교회 정성환 목사는 "매주 한번씩 봉사와 선교활동을 해왔던 지하철역이 한순간 잿더미로 변해 너무 놀랐다"고 했다.
"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한번쯤은 마주쳤던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희생됐다고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슬픔도 더 클 수밖에요.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떠 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대구지하철선교회가 생긴 목적은 지하철 참사와는 무관하다.
그동안 교인이 아닌 사람들과는 조금의 거리를 두었던 교회들이 시민들의 곁으로 좀더 다가서기 위한 첫걸음으로 지하철선교회가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지하철역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시민들과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지하철선교회 회장 신현진 목사(대구 남부교회)는 "지하철선교회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지난 2001년 32개 역과 각각 자매역을 맺은 32개 교회들로 출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낯가리기가 심했던 모든 교회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인이건 아니건 구별 없이 우리 이웃들의 삶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가야겠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민들이 많이 찾는 지하철역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지하철역내를 청소를 하고 환경조성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했다.
월배교회 이창우 전 목사는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시민들이 많이 찾는 지하철역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었다"며 "수족관과 대형거울을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간이도서관도 운영하니까 시민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대명교회 임태득 목사도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빌려주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벌였다"며 "앞으로 모든 교회들에게 선교활동을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들의 봉사활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 달에 한차례씩 정기적으로 질서의식 고취나 환경보전 등 시민캠페인성 운동도 벌였다.
남산교회 박재수 목사는 "지하철참사의 원인도 어떻게 보면 시민의식의 미성숙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식의 성숙만이 이같은 참사가 다시없는 안전한 도시, 대구를 만드는 비결이라고 봅니다"라고 했다.
또 역무원이나 기관사들을 상대로도 안전운행 강좌도 열고, 위로회도 갖는 등 대구가 안전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만 어려운 점도 많다.
교인이 아닌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시민들이 많더군요. 그동안 교회가 역할을 잘못 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됐지요. 무조건 교회를 믿으라고 하는 강요성 선교활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하철선교회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추진했다.
역내에서 음악회나 공연 등을 통해 시민들의 마음에 한발 다가서기로 한 것. 동대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은천교회 노윤성 목사는 "지금까지 관현악 연주회와 음악회 두 차례 행사를 가졌다"며 "매번 수천명이 몰리는 등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매년 정기적으로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남산교회 박 목사는 "지하철역에서의 대구시민과 함께하는 문화행사를 통해 승객들이 따뜻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하철이 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며 "이러한 풍토가 지속된다면 다시는 지하철참사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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