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 …/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 떠나는 일일세 / 작별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 …'
시인 조병화(趙炳華.1921~2003)씨는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라는 시(詩)에서 인생은 떠나는 연습을 하며,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양쪽을 살펴볼 요량으로 안동시 풍산읍 노리 소재 안동추모공원을 찾았다.
◆광중.운구.하관.취토순
안동시내서 차를 타면 20분 남짓 거리. 폭설 직후인데도 산길은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다.
이름모를 조화들만이 3천여기의 묘지앞 눈속에 활짝 펴 있다.
마치 봄꽃이 절정에 달한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산아래 또다른 세상에서의 폭설로 인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에서 보는 겉모습은 그저 조용할 뿐이다.
"그동안 장례가 있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미리 부탁해 두었는데 8일 밤 전화를 받고 9일 오전 9시쯤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고정적으로 일하는 5명의 인부들과 이날 매장이 이뤄질 8부 능선쯤 되는 묘터에 헐떡이며 도착해 이내 이들과 삽질을 하면서 땅을 팠다.
이같은 작업을 여기서는 광중(壙中.구덩이 속)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귀끝이 시릴 정도로 싸늘한 날씨였는데 몇차례 삽질에 땀이 흥건하고 숨만 가빠진다.
'지지고 볶으며 애닯게 살아도 결국 삶의 종말은 겨우 한평 남짓 땅속이구나'.
욕심을 비워야겠다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무슨 양반이 삽질도 그렇게 못하느냐"는 인부들의 핀잔이 귀에 들어올리 없다.
오전 10시쯤 예정된 시간에 어김없이 장의차는 도착한다.
상주들의 통곡 속에 '등장인생 일몽장'(登場人生 一夢場:인간 세상이 일장춘몽같다는 내용) 등 여러개의 만장(輓章)과 함께 운구(運柩)가 이뤄지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된다.
시(時)에 맞춰 하관(下琯)이 시작되고 집사자(執事者)는 그만 곡(哭)을 그치고 혹시 광중에 다른 물건들이 떨어지거나 영구(靈柩)가 비뚤어지지는 않은지를 살핀다.
하관이 끝나자 인부들은 헝겊으로 관을 깨끗이 닦고 명정(銘旌:다홍바탕에 흰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관직.성씨를 기록한 기)을 정돈해 덮는다.
다음 순서는 가족들의 취토(聚土:봉분에 조금씩 흙을 뿌리는 일)다.
이때 상주들은 더욱 슬피 울고 또 울어 한나절 현장체험에 나선 어설픈 일꾼도 덩달아 눈물이 난다.
흙넣기 작업은 선소리꾼의 '덜구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이곳에서 10년 선소리꾼을 하고있는 이원식(61)씨는"덜구소리는 망자(亡者)가 영원히 살 집을 지으며 하는 노래인 셈"이라며 한자락을 뽑는다.
"춘풍에 놀던 세월 / 명년에나 다시보리 / 왕소방초는 푸르있고 / 역력같은 이 세상에 / 초로같은 이 인생이 / 놀던 친구 하직하고 / 북망산천 들어갈제 / 황톳밥을 벗을 삼고…".
◆'덜구작업'으로 마무리
덜구소리는 흙을 넣다말고 한차례씩 장황하게 반복되면서 5채(마당)를 지을 때까지 진행된다.
상주들은 저승가는 길 노잣돈 모자랄까봐 연신 막대기에 달려있는 끈에 돈을 매단다.
이렇게 한시간쯤 작업이 끝나자 막대기엔 제법 많은 돈이 대롱대롱 춤춘다.
과거에는 전국 곳곳의 공원묘지에서 덜구소리때 일꾼들이 돈 낼 것을 강요해 잡음들도 많았다는데... 하지만 지금은 이같은 강요성 횡포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고인의 친척이나 친구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성의껏 돈을 꼽아주면 고맙게 목욕이라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어 회사측은 항상 철저한 교육을 시킨다.
덜구작업을 끝으로 봉분은 완성된다.
여기에 잔디를 입히고 상주들은 산소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곳까지 따라 온 문상객들과 안동시내서 날라온 도시락 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든다.
모든 절차는 3시간이 채 안돼 끝이 났다.
이날 영면(永眠)한 고인(67)은 1992년 앞서 떠났던 아내 옆자리에 묻혔다.
아마도 혼자 살아온 지난날 외로웠던 얘기들을 아내에게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공원묘지는 2만평 규모로 한곳에 200~300여기씩 분산 설치돼 있다.
이날 공원입구 산 아래 묘지에는 2, 3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와 폭설 뒤 묘지가 상하지는 않았는지 둘러 보았다.
김경택(39) 관리소장은 "유족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자주 산소를 찾는데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다가 이내 발걸음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사 사연도 많듯 3천여기 묘지 모두가 구구절절 사연으로 가득하다"며 "그중에서도 지난 2001년 젊은 부부와 자녀 2명이 함께 화재로 숨져 이곳에 매장된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또 "지난해는 대구 지하철 사고로 숨진 한 분도 사고 후 한달 뒤쯤 이곳에 안장됐는데 워낙 큰 사고였고 국민들에게 가슴아픈 상처로 남은 탓인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분묘 면적은 과거 '매장 및 묘지에 관한 법률'이 2001년 '장사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개인은 30㎡(9평.합장경우도 동일.종전24평), 가족 묘지는 100㎡(30평 이내), 종중.문중 묘지는 1천㎡(300평)이내로 대폭 줄었다.
분묘 1기당 시설물도 비석.상석 각1개, 그밖의 석물(인물상은 제외)1개 또는 1쌍(높이 2m 이내)이고, 묘지사용기한도 15년에 연장설치 때는 15년씩 3회로 최장 60년으로 돼있다.
이곳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대희(57)씨는 "죽어서 공원묘지에라도 묻히려면 최하 420만원은 있어야 한다"며 "돈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는 필요한 것 같다"며 씁쓰레했다.
◆生.死 공존하는 공간
이곳에서 제작한 팸플릿에는 매장 묘지는 최고가격이 457만원이었고, 가족납골묘는 12위가 1천230만원, 문중납골묘 60위는 2천300만원까지로 상품이 매우 다양하다.
배재일 전무는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납골묘 문의는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내로라하는 문중들도 납골묘 상담을 많이 해오고 있다"고 했다.
매장작업으로 흘린 땀이 마르고 나자 문득 납골당이 궁금해졌다.
2002년부터 안치를 시작한 납골당은 벌써 만원 상태다.
칸칸 마다에는 꽃들로 뒤덮여 있다.
생전에 못다한 말들이 무엇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사연들이 가득 담긴 예쁜 메모 쪽지들이 곳곳에 달려 있다.
어떤 칸에는 정다웠던 시절의 가족 사진과 연인들의 사진들이 문앞에 붙어 있기도 했다.
언뜻 공원묘원은 죽은 자들끼리, 또 산자와 죽은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으로 외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안동.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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