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 기자의 영화보기-송환

다큐멘터리 '송환'(19일 개봉)은 '간첩들과 함께 한 12년의 기록'이다.

제작기간 12년, 500개의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 마치 수백억원을 들인 상업영화의 홍보문구를 연상시키지만 오롯이 사람의 땀과 열정으로 그려낸 기록이다.

'송환'은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의 연출부로 참여했던 김동원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상계동 올림픽' '벼랑에 선 도시민빈' 등 이 시대에 소외되고 어두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든 다큐멘터리스트다.

그는 1992년 우연한 기회에 두 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만나게 된다.

출소 후 갈 곳 없는 그들과 한 동네에 살면서 그들의 삶과 지나온 역사를 조용히 카메라에 기록한다.

야유회에서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이질감을 확인하기도 하고, 전향을 위한 고문과 회유에서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전향하지 않는 그들의 의식에서 역사를 대하는 꼿꼿함을 보게 된다.

"일제시대와 1평짜리 감옥에서도 내뱉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게 '이눔의 세상,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입에 붙은 거야". 몇 번에 걸쳐 사기를 당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한 전향수 할아버지의 순박함에는 웃을 수 없는 코믹함도 묻어난다.

'카메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북으로 송환되고, 카메라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끝난다.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카메라의 객관적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옳고 그르다'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은 애초에 상정하지도 않은 듯해 보인다.

남과 북의 이념전쟁, 그 틈바구니에서 갈 곳 없어 헤매던 육신과 달리 힘겨운 세월을 견디며 꼿꼿하게 지켜온 신념과 삶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념은 이성의 한 부분이며, 이성 또한 인간이 가진 많은 속성 중 하나'라는 감독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2시간 30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간간이 보여 지는 코믹스런 면도 있지만, '실패한 혁명가', '뿔 달린 간첩'이 아닌 옆집 할아버지 같은 '사람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996년 체포되기도 했다.

카메라를 극도로 꺼리는 그들에게서 이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를 끌어낸 감독의 열정이 놀랍다.

올해 선댄스영화제는 '표현의 자유상'을 시상하며 '송환'을 찬사했다.

상영시간 142분.김중기기자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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