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육과정, 2005학년도 대학입시, 사교육비 경감대책 등 새로운 교육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안에 휩싸인다.
특히 2005학년도 대학입시는 7차 교육과정 시행에 맞춰 선택 중심으로 바뀐데다 대학별 입시 요강이 워낙 복잡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의 출제.채점 방법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교육은 다른 어느 정책보다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새롭게 던져지는 정책의 실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또 수능
교과목 선택권이 크게 늘어나는 2005학년도 수능시험을 앞둔 고3생들은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에 맞춰 선택하는 게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각 과목의 난이도와 응시집단의 평균 등이 제각각이어서 표준점수로 할 경우 과목간 유.불리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학탐구의 예를 보자.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물ⅠⅡ, 지학ⅠⅡ 등 8개의 선택과목이 있다.
1과목을 반영하는 대학부터 4과목을 반영하는 대학까지 다양하다.
Ⅱ과목 하나를 필수로 지정한 대학도 있다.
이 가운데 생물Ⅰ은 많은 수험생들이 선택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점수 분포를 보이지만 선택이 적은 지학Ⅱ는 표준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화학Ⅱ는 의약계열에 응시하려는 수험생들이 많이 선택하기 때문에 응시집단의 평균이 상대적으로 높다.
삐끗하면 표준점수에서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수학의 경우 '가'형과 '나'형이 있다.
'나'형은 공통수학과 수학Ⅰ을 공부하면 치를 수 있고 '가'형은 여기에 수학Ⅱ를 더 해야 한다.
자연계 수험생이라면 응당 '가'형을 택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나'형을 선택하는 수험생이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 수험생들의 평균 점수가 낮아 표준점수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들이 자연계열 학과에서 '나'형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상황이 이렇자 수험생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보다는 어느 과목이 유리한지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모의평가에서 표준점수가 잘 나온 과목을 듣는 게 관건이 된 것. 하지만 그 과목을 학교에서 개설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고3생들이 사회.과학탐구 과목은 학교에서 3개의 선택과목을 배우고 학원에서 하나를 더 배운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모(ㄷ여고3년)양은 "어떤 과목은 유리하고 또 어떤 건 불리하다는 소문이 모의평가를 치를 때마다 다르게 나돌고 있다"며 "정작 시험 공부보다는 과목 선택에 허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수능시험이 고3생들 사이에 '로또 수능'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소년기 삶의 중요한 방향을 좌우하는 국가고사가 복권 추첨식 확률 게임으로 전락한 것이다.
◇3년꼴로 바뀌는 대입제도
한 중3 학부모의 얘기. "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가지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소질을 살리는 데 애를 썼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응시한다고 하더니, 우리 애가 대학에 가는 2008학년도에는 내신 중심으로 바꾼다고 하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는 1945년 대학별 단독시험제 이후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 지금까지 큰 틀에서만 12차례 변화를 겪어왔다.
교육부 장관이 바뀌면 새로운 입시 제도가 발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3년꼴로 입시의 기본 골격이 바뀌고 있다.
특기를 강조하던 2002학년도, 과목 선택권을 중시하는 2005학년도 입시에 이어 2008학년도에는 내신 중심으로 바뀐다.
고교 교사들조차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내용이 변하는 셈이다.
올해 대구에서만 벌써 10차례 가까이 입시설명회가 열린 사실은 학생, 학부모들의 정보 수요가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와중에 살찌는 것은 사교육이다.
학원가는 학생들의 이같은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 학부모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최근 사회탐구의 어느 과목을 선택하면 유리하다는 소문이 번졌는데 사실은 그 과목 학원 강사가 퍼뜨렸다는 씁쓸한 얘기까지 들린다.
중소 시.군 지역으로 가면 이같은 소문조차 듣기 힘들다.
정보 소외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충실히 입시에 대비할 수 있을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올해로 8년째 고3생을 맡아왔다는 한 교사는 "교육당국이 새로운 제도를 들고 나와 혼란을 일으키면 그에 맞춰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학생들 스스로 실험용 생쥐라고 부르는 우리 교육현실이 언제 제 궤도를 찾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조두진.최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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