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봄이 되면 한바탕 봄꽃들과 상춘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광양의 매화가 꽃비를 뿌린 뒤, 질 즈음이면 산수유가 이어받아 꽃망울을 일제히 터트린다. 산수유축제가 한창인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은 이번 주말이면 노란 산수유가 계곡마다 돌담마다 흐드러지게 펴 있을테고 꽃나들이 나선 관광객들로 가득찰 것 같다. 구례에서 멀지 않은 전북 임실 섬진강 최상류에는 옥정호라는 빼어난 경관을 가진 호수가 있다. 이 정도 비경이 있는 지 아는 사람은 아직 드물어 아침 일찍 나선다면 인적드문 산중 호수에서 육지속의 섬을 바라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옥정호
섬진강은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강이 발원하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사람들은 '서천' 또는 '백운천'으로 부르고 그 아래쪽 임실군 관촌면과 신평면에서는 '오원천'으로 부른다. 운암면에서는 '운암강'으로 불리며 순창땅에 들어서면 '적성강'이 된다.
이렇게 토박이들이 제각각 자기네들의 이름을 가지고 부르는 섬진강은 1926년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물길이 막혔다. 댐에 막힌 섬진강의 물이 만들어 낸 작품이 옥정호다. 워낙 오지에 위치해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문 낚시꾼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고 그 비경이 차츰 알려져 그 비경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사진가들이 새벽옥정호를 찾는다. 11월이나 3월경 물안개가 핀 옥정호는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엽서가 되는' 곳이다.
새벽 여명에 물안개가 가득 찬 모습을 만나기 위해 옥정호가 가장 잘보이는 국사봉전망대 밑 산장에서 하룻밤 묵은 뒤 세수도 하지 않고 씻지 않고 전망대에 오르니 쾌청한 날씨가 반긴다. 물안개는 없지만 그래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정호는 그림같다.
눈을 빨아들이는 듯한 물빛에 두리둥실 떠 있는 육지속의 섬. 두 세채의 집이 보이고 모두가 밭이다. 맑은 담수호에 잠긴 산그림자는 섬마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바닷가 선착장처럼 호수에 들어 선 산자락은 아침햇살을 받아 잔잔한 물여울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루를 연다.
옥정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암분교'가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근무했던곳이다. 전교생 31명에 교사는 4명. 폐교대상에 오른 이 분교는 얼마전부터 학생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예닐곱명의 아이들이 아담한 교정에서 정신없이 장난치고 있다. 교실 네칸이 전부인 교사, 축구골대와 낡은 철봉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시소.
한켠에는 여느 시골학교처럼 책읽는 하얀 소녀동상이 나무그늘밑에 있고 병풍처럼 둘러싼 소나무 숲 앞으로는 지극히 평화로운 옥정호가 있다. 이곳에서 김용택시인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섬진강을 노래했다. 자연이 시심을 자극했으리라.
◇산동 산수유 마을
임실에서 남원으로 나와 19번국도를 타고 구례쪽으로 50여분을 달리면 지리산 온천관광단지가 나온다. 오는 28일까지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지리산 만복대 능선을 바라보며 산골마을 꼭대기로 향한다. 가로수가 모두 산수유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지만 가냘픈 가지에 노란 구름들을 담아 봄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상위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계곡마다, 밭고랑마다 노란색 우산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 정상부근에는 아직도 얼음이 있을테지만 상위마을에 산수유가 만개하면 잿빛 지리산도 긴 잠을 털어내고 봄맞이에 나설 것이다.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위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수유마을. 산수유는 들판에 피는 꽃이 아니다. 산비탈에 박혀 있는 산골에 피기에 더 곱다.
산동마을은 노란색 물감을 뿌려 놓은듯 산수유가 마을 고샅길과 계곡을 가득 메우며 흐드러지게 피어, 꽃길에 취한 상춘객들에게 꽃멀미를 선사한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상점에는 꽃멀미에 특효약(?)인 고로쇠물을 판다. 1리터 짜리 한병에 7천원. 기름값보다 비싼 물값이다.
취재수첩
◇옥정호가는 길 : 88고속도로→남원톨게이트→전주방향 17번 국도→임실→운암면 운암대교에서 우회전→운암삼거리 어부집에서 우회전→국사봉 전망대(임실에서 파출소를 찾아 문의하면 상세하게 안내해 준다.) 2시간 반 소요.
◇산수유마을 가는 길 : 임실→ 남원→구례(19번 국도)→지리산 온천랜드→상위마을. 50분소요.
◇시간이 난다면 내친김에 하동쪽으로 내려와 매화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아직 매화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고 하동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탄 뒤 구마고속도로로 올라오면 길이 단축된다.
사진·글 :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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