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팔공산의 봄풍경

팔공산 자락은 지금 막 분홍색 물감을 군데군데 뭉개어놓은 듯합니다.

"더 없이 아리따운 나무 벚나무는지금\가지에 꽃을 담뿍 드리운 채 "(하우스먼)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전 열시 삼십분. 버스와 자동차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습니다.

노모를 모시고 나온 초로(初老)의 아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아버지의 모습도 보입니다.

"일요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아빠는 오늘부터 늦잠자지 않고 산에 오르기로 결심했어!" "아빠, 나도 결심했어!"

그러나 젊은 연인풍의 남녀는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이따금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힘차게 발걸음을내딛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미소에는 풋풋한 봄 내음이 묻어 나옵니다.

산골짜기는 돌연히 따뜻한 육친들의 숨결과 감미로운 연인들의 숨결로 수런거리기 시작합니다.

마법의 세계에 초대라도 받은 듯이, 이곳에서는 아주 느릿느릿 행동하게 됩니다.

돌계단을 오르다가는 철책에 기대어 서서, 우리들 곁을 바싹 스치고 달아나는 다람쥐에 눈길을 주기도 하고, 바람 한점 없어도 사각대는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기울이기도 합니다.

산 중턱에 다다르게 됩니다.

정맥이 드러나 보이는 파르스름한 이마, 깊고 잔잔한 눈, 애조 띤 목소리, 이제 막 스물이나 되었을까? 지나가던 중년 남자가 불쑥 그에게말을 던집니다.

"스님, 지금 암송하고 있는 게 무엇이오?""천수경(千手經)입니다" "무슨 애틋한 사연이라도 있나요?" 남자의 질문이 스님의 목탁 소리에 묻혀버립니다.

돌계단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정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위병풍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불상이, 근엄한 눈빛을하고 마을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노천광장에는불심 깊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경배를 바치고 있습니다.

천년 전, 어느 한 석공은 무슨 기원을 담아서 저 거대한 바위에 부처님의 형상을 새겨 넣었을까요? 애증과 오욕으로 딱딱해진 우리들의 가슴에 부처님의 천년 숨결이 와 닿는 듯합니다.

천현섭 무산유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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