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총장이 본 4.15총선>새로운 정치 도약을

이번 제17대 총선은 뜻깊은 빛깔을 띠고 있다.

이른바 보수주의와 지역주의가 꼬리를 감추면서 살아난 빛깔이다.

몇 사람의 보스가 무리를 이끌며 힘을 떨치던 정치가 꼬리를 감추고, 그런 사람들의 고향으로 지역을 갈라 무턱대고 밀어주던 애향심이 사라지면서 솟아오르는 희망의 빛깔이다.

이것은 우리 정치의 걱정거리였던 보스와 지역의 시대를 마감하고 진보와 보수라는 바람직한 대결로 재편되는 도약의 조짐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민주 정치의 교육을 받았다.

그런 덕분에 이번 4.15총선에서는 지긋지긋한 금권선거와 지역 몰표도 제법 뿌리치게 되었고, 아직은 미숙하지만 국가관과 세계관을 달리하는 이념의 정당들이 자리를 잡으려 한다.

그것도 '빠른 진보', '더딘 진보', '진보+보수', '열린 보수', '진한 보수'. 이렇게 제법 구색을 갖추어 좌우로 나란히 자리잡은 모습을 보인다.

이번 총선은 이런 정당들의 자리매김을 얼마간 확정짓는 기회로서도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제 결정의 시간은 막바지에 왔고 남은 것은 우리 유권자의 몫이다.

나라 살림과 지역문제를 믿고 맡길 만한 일꾼을 고르는 일과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저울질하여 정당의 자리를 찾아 매기는 일을 겹쳐 짊어졌기에 책임이 전에 없이 무겁다.

누가 그 사람이며 어느 것이 그 정당인가. 그러나 골라내는 잣대는 우리 유권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잣대의 눈금을 정확히 읽을 줄 안다.

제16대 국회까지 열여섯 차례나 몸으로 익히며 배웠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주인인 국민을 속이지 않는 사람, 정파의 이익보다 나라의 살림에 지혜를 모으는 정당을 골라야 하는 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추상같은 투표를 하느냐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몸에 밴 온갖 이기심을 끊어버려야 한다.

가장 무서운 이기심의 뿌리는 혈연, 지연, 학연에 박여 있다.

이들 뿌리를 얼마나 끊어내고 냉정한 이성으로 그 사람과 그 정당을 찾아 표를 주느냐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심판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 걸린 역사의 무게를 알아차리고 투표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정치 도약의 기회가 지금 문밖에 와서 우리를 깨우고 있으니 일어나 정성껏 맞이하는 것이 나라 주인의 도리다.

김수업 대구 가톨릭대 총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