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정 선거법 첫 시행…확바뀐 선거문화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가 시작됐다.

후보자와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실감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선거법 개정이 있었지만 돈은 묶고 입과 발은 푼다'는 개정 선거법의 기본 정신이 살아서 이번 만큼 선거 문화를 바꾼 적은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정치자금법, 정당법 역시 선거문화 변혁의 밑거름이 됐다.

◇양지=이같은 대변혁을 불러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선관위와 검.경찰의 강력한 처벌과 단속 의지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말로만 강력한 선거법 준수와 추상같은 단속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되로 받고 말로 준다'는 선관위의 홍보 구호처럼 선거범죄신고 포상금 최고 5천만원 상향,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유권자에 대한 50배 과태료 부과라는 새 제도 도입이 약효를 발휘했다.

그동안 '물에 물 탄듯' 느슨했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단속에 반신반의하든 후보측이나 유권자들도 강력한 당국의 의지를 확인하고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선파라치'나 프락치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민간의 단속 눈길도 곳곳에 숨어 있어 선거 막판에 가서는 후보자의 금품을 주려는 의지도 약화됐고 유권자의 바라는 마음 역시 종적을 거의 감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거 막판에 치열한 경합 지역에서 불미스런 사건들이 발생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선거문화는 대단히 '쿨다운'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돈선거를 방지하는데는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의 규정도 한 몫을 했다.

돈선거의 온상이었던 조직을 동원한 선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근절된 수준은 아니었지만 급격한 감소세를 이룬 것만은 분명하다.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을 받아온 지구당의 폐지와 대부분의 선거자금에 대한 일일신고제 역시 후보들의 돈 씀씀이를 가로막거나 줄여주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

게다가 합동연설회와 정당연설회 그리고 개인연설회 등 청중을 동원해야 할 대형 집회 개최가 봉쇄된 것도 조직 동원의 필요성을 저감시키는데 일조했다.

엄청난 조직력과 자금력을 자랑했던 한 후보는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돈을 쓸 데도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때문에 예비후보자 제도 도입 등으로 사실상의 선거운동기간이 선거 한달여 전인 3월12일 시작된데다 그보다 훨씬 앞서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열기가 고조돼 선거 과열 우려가 제기됐으나 걱정 만큼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선거법 위반 적발건수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났으나 이는 선거법 단속기준이 강화되고 그동안 음성적으로 비밀리에 이뤄졌던 각종 불법선거가 드러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선관위 등 당국의 단속 역시 몇 배나 강화됐던 것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음지=혁명에 가까운 선거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늘도 없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대선에 이어 선거판에서의 '인터넷과 무선통신의 전성시대'의 도래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후보자 비방이나 흑색선전 사례가 대폭 늘어난 점은 개선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16대의 경우 사이버이용 불법선거운동은 25건이었으나 이번엔 254건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선관위가 정식 처리하지 않고 삭제요청한 6천800여건도 전부 선거법 위법사항이라는 점은 그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계명대 김혜순 교수는 "오프라인 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도 온라인 상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단속 대상이 되는 시대착오적 선거법 조항에 대한 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를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매번 선거 때면 지적되는 사항이지만 정책선거의 실종도 이번 선거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었다.

준 대선적 성격을 띠다보니 정치적 쟁점에만 유권자의 이목이 집중돼 공약도 정책도 후보도 모두 매몰되는 이상한 선거가 됐다.

일부 논쟁거리가 된 정책공약도 있었지만 공약의 재탕과 삼탕 그리고 상대 공약 복사 등의 행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정당이나 후보나 유권자 모두 정책과 공약에 관심이 없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

돈을 묶는 대신 대폭 확대된 미디어선거 문화는 새로운 선거문화의 돌파구를 제시하긴 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언론보도가 가장 중요한 후보자들의 홍보 수단으로 자리잡았고 특히 후보들을 상대 비교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TV토론회 밖에 없었으나 언론사의 토론회 방식의 미비와 구조적 결함, 정당은 물론 후보자들의 준비 부족과 무관심, 거기에 유권자들의 외면 등이 어우러져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데 부족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선거분위기 실종도 중요한 개선점으로 지적됐다.

선거 현수막이 내걸리지 않고 합동연설회나 정당연설회 등이 열리지 못하는데다 돈마저 묶어버려 관광, 인쇄업 등의 '선거특수'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선거에 굳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선거가 치러지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이나 언론매체와 다소 거리가 있는 노인층이나 농어촌 유권자들을 배려한 선거운동 방법의 부족 내지 부재는 시급히 보완해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돈과 거친 입은 묶더라도 돈이 아니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방식으로의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단 막고 보자는데 그치지 않고 불탈법이 아니면 모두 풀어준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선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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