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망개떡의 꿈

국제영화제가 열릴 무렵이면 나는 남포동 선창에 간다.

뱃고동을 울리며 떠나가는 배들과 갈매기들, 자갈치 시장 어판장의 모습만으로 남포동 선창은 떠들썩하고 즐겁다.

선창 가를 서성이며 나는 한 특별한 풍경을 기다린다.

뱃전에 이는 물보라를 바라보는 동안 한 사내가 어깨 위에 물지게 비슷한 것을 메고 뒤뚱이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천원 지폐 한 장을 그에게 건넨다.

망개떡 장수다.

나무 이파리에 싼 채 찐 달떡과 살구알 만한 팥당고 몇 알을 그가 건네주는데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련한 맛이 깊다.

나무 이파리에 싼 달떡을 망개떡이라 부르는데 그 어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떡장수의 인상이나 사투리도 정겹거니와 그가 어깨에 멘, 양쪽에 낡은 유리 상자가 달린 지게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퍽 포근해진다.

습기가 촉촉이 밴 그 유리 상자 안에는 망개떡들이 하얀 배꼽을 내밀고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망개떡을 먹으며 들고나는 배들을 바라보다가 가까운 영화관에서 인도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이 세상에 부산 만한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우련 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내를 만날 적마다 나는 사내가 하루에 망개떡을 얼마쯤 팔까하는 궁금증을 지닌다.

내가 떡을 사는 동안 옆의 손님들이 떡을 사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사내의 수입이 신통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선창의 한 쪽으로 걸어갈 때면 그가 제 마음 속으로는 저 걸음걸이가 좋아서 망개떡 장사를 계속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돈으로 되어버린 지금, 어떻게 이런 한심한 떡장수가 부산 같은 대도시의 그늘에서 숨쉬고 있는지 내겐 신비하기만 하다.

총선 전 강남의 한 고층 아파트단지 앞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의 모습을 진단해 볼 수 있는 한 행사가 열린 바 있다.

가난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였다.

타워팰리스라는 이름을 지닌 이 고층 아파트는 현재 우리 사회의 부의 한 상징으로 되어 있거니와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몇몇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못나고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 것인데 왜 이곳에 와서 이 난리를 치는가 하는 것이 항의의 내용이었다.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항의는 충분히 타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항의가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 해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만약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이 매일 이 아파트 단지 앞을 찾아와 수 백 명씩 우리도 함께 먹고 살자,고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경찰이나 경비원들이 이들의 행동을 저지한다고 하자. 이런 상황이 일년이고 이년이고 지속된다면 입주민들은 필경 하나둘 짐을 싸 떠날 것이다.

프리미엄만 십 억이 넘는다는 아파트의 가격은 점점 쪼그라들 것이며 세월이 흐르면 슬럼가로 바뀔 수도 있다.

구미의 슬럼가는 대부분 이런 역사의 소산인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무기 삼아 끝까지 저항하는 사회는 두렵다.

그런 사회에서 꿈과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부유한 계층이 가난한 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우려는 의지를 지닐 때 그 사회는 진보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길이야말로 부자가 부자의 길을 오래 걸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인 것이다.

남포동 선창에서 망개떡 하나를 먹으며 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이 망개떡만큼 소박하고 달콤한 꿈을 지닐 수 있기를 생각한다.

가난한 이들이 땀흘려 열심히 일하고 부자들이 자신의 유리상자 안의 망개떡들을 꺼내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이 건네줄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고 꿈 많은 시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올해도 영화제가 열리면 나는 남포동 선창에 간다.

그곳에서 뒤뚱이며 걸어오는 망개떡 장수를 만날 것이다.

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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