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슬리버

뉴욕 한복판에 위치한 슬리버 건물 안에서 누군가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이 빌딩을 상속받은 지크는 거금을 들여 건물 전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든 입주자들을 한눈에 관찰하고 있다.

사춘기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닮은 여자들을 몰래 훔쳐본다.

그리곤 그녀들에게 빠져든다.

관음증은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해 이상한 상상이나 행동을 하는 성도착증 중의 하나다.

관음증 환자는 어릴 때, 어머니의 나체를 본 경험이 있다.

그때 가졌던 두려움으로 인해 실제 성교에선 발기불능이 되고, 여자가 옷을 벗는 모습이나 성행위 장면을 몰래 봄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다.

이 건물로 새로 입주한 이혼녀인 칼리는 지크의 새 목표물이 된다.

칼리는 죽은 지크의 어머니를 쏙 빼 닮았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칼리는 독신 생활의 외로움을 욕실에서의 자위행위로 달랜다.

빠짐없이 지크가 훔쳐보고 있다.

칼리의 오르가슴을 보면서 지크는 흥분한다.

엿보기 좋아하는 호색가를 피핑탐(Peeping Tom)이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글랜드 중부지역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 가렴주구를 일삼는 영주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세금을 줄여 농민의 고통을 덜어주자고 요청하나 영주는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아내의 간청이 계속되자 남편은 한가지 내기를 한다.

만약 부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면 청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남편의 마음을 돌려 농민을 구할 수 있는 길이 그 방법뿐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영주 부인의 나체 행진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농민들은 그녀의 고마움을 받드는 뜻으로 그녀의 알몸을 쳐다보지 않기로 맹세한다.

아름다운 부인의 나체 시위가 있던 날 창문은 굳게 닫히고, 거리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극적인 여체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는 자가 있었다.

탐(Tom)이라는 이 남자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창 밖으로 슬쩍 부인의 나체를 훔쳐보려 하였다.

그 순간 탐은 눈이 멀고 만다.

숭고한 부인의 뜻을 성적 호기심으로 인해 저버린 신의 징벌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훔쳐보는 탐(Peeping Tom)은 관음증과 동일한 말로 쓰이고 있다.

칼리는 젊고 적극적인 지크의 접근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지크는 칼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몰래카메라와 자기의 실체를 고백한다.

충격에 휩싸인 칼리는 당혹해하지만 결국 지크의 병적인 면을 받아들인다.

관음증은 예술적 소재로부터 잔혹한 성범죄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대도시의 익명성과 몰래카메라. 감쪽같이 숨기려는 의도와 어쨌든 엿봐야겠다는 심리는 건강한 삶을 소외시켜서 신경증의 요소가 된다.

슬리버 빌딩의 '피핑 탐' 지크를 영화를 통해 지켜보는 우리도 관음증은 아닐까?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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