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업 르포>"이래저래 서민만 죽을 맛"

<르포>대체버스를 타 보니

"돈이 없어 승용차를 몰지 못하고 버스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서민만 이래저래 죽을 판이죠...". 대구의 시내버스가 멈춰선지 이틀째인 26일 밤 8시30분.

달구벌대로 동아쇼핑(대구 중구) 앞 버스 승강장에는 20여명의 시민이 목을 뺀채 기약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 만에 도착한 한대의 관광버스. 시내버스 대신에 투입된 대체 버스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모르면서도 다만 버스가 왔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시민 20여명이 우르르 달려가자 버스기사는 "죽전네거리까지 갑니다. 1천원만 내세요"를 연신 외쳐댔다.

버스안은 꽃무늬 커튼과 울긋불긋한 조명이 있는 전형적인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마이크를 들고 승강장마다 안내방송을 했다.

시내버스 파업뒤 임시 운행에 나섰다는 기사 천종열(54.대구 서구 평리동)씨는 " 갓바위와 동대구역을 왕복하는 104번 노선을 운행하다 차고지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는 방향이 같으면 태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좌석을 가득 채운 승객은 석가탄신일을 맞아 갓바위에 갔던 할머니들과 시내로 놀러나왔던 학생들이 대부분. 모두들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린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갓바위에서 탓다는 윤모(62.여.달서구 죽전동)씨는 "죽전네거리까지 2시간30분동안 버스를 타서 힘들긴 했지만 비디오까지 틀어주는 덕분에 심심치 않게 올수 있었다"며 "노인들의 바깥나들이가 가장 많은 석가탄신일날 파업을 해 너무 얄밉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재희(16.송현여중)양은 "등교길은 엄마가 태워다 주지만 학원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 걸어다니고 있다"며 "시내버스가 앞으로도 계속 다니지 않으면 학원을 그만두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주말이 다가오면서 대체버스조차 타기가 더욱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관광버스 운행보다 수익이 낮은데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운전기사들이 많아 운행을 포기하는 차량이 늘고 있기 때문.

관광버스기사 천씨는 "오늘 기름값빼고 30만원 정도를 벌어 수입이 괜찮은 편이지만 관광버스에 비해서는 수입이 적어 내일부터는 본업인 관광버스운행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며 "주말이 되면 대부분의 관광버스들이 대체버스 영업을 그만 둘 것"이라고 했다.

관광버스가 승객을 죽전네거리에 모두 하차시킨 9시 20분. 이곳에도 귀가를 서두르는 시민 10여명이 초조한 눈빛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러나 30여분을 기다렸지만 이미 대체 버스는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50대 아주머니가 한마디했다. "빠듯한 살림에 출퇴근길 택시를 탈수도 없고, 이제는 걸어 다닐수 밖에..."라면서 "없는 서민만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시민들은 결국 일부는 택시를 타고, 또다른 사람들은 각자 바쁜 걸음으로 목적지로 흩어졌다. 한윤조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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