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물 미술심의'...또 다른 업체 길들이기?

'합의제'...한 두사람 반대해도 '부결'

대형 건축물에 반드시 설치하도록 된 미술품 심의가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 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문예진흥법은 연면적이 1만㎡ 이상 건축물을 지으면 인.허가를 받은지 4개월 내에 지자체에 미술장식품에 대한 심의를 받고 건축물 사용승인 이전까지 설치하도록 명시했다. 그런데 건축물과 주변 환경을 미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의도로 시행되고 있는 미술품 심의가 건축사업과 작가 활동에 지장을 주는 사례가 자주 불거지고 있다.

미술장식품 심의가 건축규제처럼 작용하게 되는 근본원인은 건축주의 절반 정도가 기한내에 심의를 받지 않고 준공이 임박해서 신청, 부결될 경우 준공일자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결되기 때문.

그러나 건축주가 미술장식품에 대한 심의를 늦게 하는 관행도 문제지만 심의하는 방법이나 절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구시조례에는 시 미술장식심의위원회(위원 10명, 임기 2년)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가운데 건축주와 작가간 미술장식품 설치 계약서상 가격의 적정성, 예술성, 환경과의 조화 등을 평가한 뒤 가결이나 조건부승인 또는 부적격 판정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대구시 미술장식심의위는 투표제나 점수제가 아닌 '합의제'를 채택, 한두 사람이 강하게 반대할 경우 부결로 연결, 미술장식품을 재제작하느라 시간이 걸리면서 준공일을 맞추지 못해 아파트 주민들은 제때 입주하지 못하고, 시공업체는 입주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례가 빚어지는 것.

또 미술장식품에 대한 의견도 작가로부터 직접 듣지 않고, 담당공무원이 작가를 대신하여 설명을 하며, 모형과 서류, 시뮬레이션으로 심의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건축심의와 교통심의의 경우 건축주나 설계사무소 관계자들이 입회, 심의위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데도 유독 미술심의만 작가를 배제하고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건축주와 작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심의가 이뤄져 작품의도나 예술성에 대한 이해가 왜곡될 수 있고, 작가와 건축주는 부결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도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열린 미술장식심의위에는 9개 업체의 미술품 11점이 상정, 6건 조건부 승인, 5건이 부결됐다.

이날 탈락한 모 업체와 작가는 "왜 부결됐는지 모르겠다. 업체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보냈다. 또 같은 날 부결된 '태왕 아너스'의 경우, 준공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신청을 한 심의가 부결돼 건축주, 입주자, 작가 모두 피해를 보게 됐다.

건축주인 (주)태왕은 분양막대금(20%)을 받을 수 없게 됐고, 입주자는 사용검사지연에 따른 등기불가로 재산권 행사가 어렵게 된 것. 시 관계자는 "조형물설치는 공동주택의 경우 건축비의 1천분의 1, 주상복합은 1천분의 7로 규정하고 있는데, 덤핑 발주나 작품성이 떨어지면 부결된다"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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