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자살과 순국의 차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자살의 방법은 83가지, 자살의 동기는 989가지라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루평균 1천200명이 자살하고 8천500명이 미수에 그친다.

1년에 무려 45만명이 83가지의 자살방법 중 어느 한가지 방법을 통해 죽어가고 있는 꼴이다.

최근 서민들이 보기엔 유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회지도층 저명인사들의 잇따른 자살과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를 보면서 왜 갑자기 우리 사회에 우울한 자살얘기가 작은 화두로 떠오르게 됐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시장(市長), 재벌, CEO 등 명예와 부를 지녔을 법한 계층의 잇단 자살 얘기가 그들에겐 비극이긴 하지만 서민들의 가슴에는 왠지 아리게 다가오지 않는것 또한 '왜 그럴까'란 의문을 갖게한다.

'자살률이 1위가 될 만큼 살아버티기가 힘든 나라여서'라기엔 경제지표와 삶의 인프라가 아직은 그렇게 막되고 험한 처지도 아니다.

자살로 증명해야 할 정도의 드높은 세상명예를 혼자 다 지니고 사는 처지들도 아니다.

그럼에도 수억원어치의 자살방지 미끄럼틀을 설치했다는 한강다리에서만 투신자살자가 올들어 벌써 194명을 넘어 서고 있다.

물론 한강에만 자살자가 많은 것은 아니다.

영국의 템즈강이나 투신자살자 세계 최다의 다리라는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 다리에도 자살자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템즈강 자살자들에 대해 동정 대신 비웃듯이 이렇게 비판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강에 투신하는 사람들'. 영국인들은 그들의 낭만적인 영국정신을 상징하는 템즈강이 소수 자살자의 현실 도피처로 이용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 역시 수심 100m의 거센 해류와 싸우며 불굴의 투지와 희생으로 건설한 세계 최고의 다리가 세계 최고의 자살다리로 이름 나는 것을 싫어한다.

자살행위를 다리건설에 담겨있는 불굴의 투지와 희생, 인내의 인간정신을 모독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살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되며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라는 말처럼 어제 현충일을 보내면서 순국선열의 희생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의(자기만을 위해 죽는 자살) 1위 기록은 낯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단 1년간의 자살자수가 베트남전쟁 7년동안에 전사한 미군 병사수의 10배가 넘는 비극은 인류가 자초하고 있는 또다른 정신적 질병이며 재앙이다.

그런 뜻에서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생명의 고귀하고 위대한 가치를 가르치고 일깨우는 달이기도 하다.

생명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깨우친다는 것은 곧 목숨을 허투루 내버리는 자살의 무가치함과 죄악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하느님이 내려주신 생명은 하느님이 거두어 갈때까지는 지켜야 한다'고 했다.

자살, 그것은 989가지 자살이유 중 그 어떤 것이었든 잘못되고 수치스런 것이다.

그리고 호국의 달이 아니라도 누구나 약한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자살충동이 있을 때 한번쯤 생각해보자.

하나뿐인 다같은 생명이라도 순국과 자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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