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염의 극치 '금복주 달력'

'금복주 달력'은 대중성의 한 코드였다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연탄불 화덕, 떼 국물로 시커먼 바닥에 천정에는 몇 해나 묵은 접착 파리덫이 걸려있는 선술집.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백열등마저 그이가 밀어주는 그네처럼 낭만이 자르르 흐르지만 현실은 심히 꾀죄죄했다.

벽에는 술에 취해, 또 사랑에 취해 휘갈긴 온갖 낙서들... . '전두환이 물러가라''호헌철폐, 독재타도'에 '니기미 X팔'이란 원색성에 'OO는 OO거'라는 유치한 사랑의 선언문들이 난무했다. 간혹 좌에서 우로 뿌려댄 오바이트 흔적들도 처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목안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야 했던, 그래서 뱉어내 버리고 싶었던 기억들, 눈물나도록 그리워 채울 것이라고는 술 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 모든 사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이들이 있었다.

유지인, 장미희, 고두심, 정윤희... . 이른바 술집 캘린더 걸들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의 감방을 장식했던 지나 롤로브리지다, 라켈 웰치처럼 그들은 꿈과 희망, '그래도 언젠가는 저런 여자를 데리고 뽀뽀하고...뭐도 하고'라는 보랏빛 미래를 안겨주었다.

슬픔과 아픔이 하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지던 그때도 그 모든 것을 어루만져 준 연인이었기에 오늘은 캘린더 걸을 얘기한다.

술집 캘린더 걸의 '민증'은 사실 섹스다. 태생적으로 섹스어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술과 섹스는 몽환의 익스프레스 카드이며, 합승권 아닌가.

술집 캘린더라면 '금복주 달력'을 빼놓을 수 없다. 캘린더(카렌다가 더 정겹긴하다)가 아니라 '달력'이다. '금복주 달력'은 이미 캘린더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 말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것이며, 당시 대중성의 한 코드였다는 말이다.

'금복주'. 대구가 낳은 최고의 기업이다. 해준 것은 술 밖에 없지만 캘린더의 완성도와 섹스어필의 '순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80년대 말 '금복주 달력'은 자취생들의 수집목록 1호였다. 다달이 새로운 여인들이 초최한 방안을 환하게 해주었다.

'금복주 달력'은 25도(요즘은 23도) 도수만큼 화끈했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것이 고작인 OB 맥주나 크라운맥주의 광고보다 확실히 야했다. 물에 젖은 반라의 여인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거기에 2% 부족한 요염한 표정까지 더해 자취생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술=섹스'라는 등식의 순수성은 '야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옷 속에 보일 듯 말 듯 비치는 여인의 젖꼭지, 하체의 '거뭇거뭇함'은 캘린더 표현수위의 한계점. 일반 가정에 걸어놓기에는 확실히 민망의 수위도 높았다. 그 또한 '일로매진'하는 금복주의 순수성이 아닐까.

희한한 것은 술집에 앉아 고개를 쳐들면 영락없이 여인의 치마속이 보인다는 것이다. 입체사진이 아닌 것이, 그리고 아직 현대의 사진기술이 거기까지 밖에 안 되는 것이 통탄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주당의 눈높이를 간파한 앵글의 그 교묘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금복주 달력'의 또 하나의 미덕은 서민의 호주머니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달력을 보면 '안주 한사라' 안 시켜도 될 만했다. 부유층의 엽기 식문화로 비난받고 있는 '누드 스시'가 이런 맛 아닐까.

80년대 초까지 유명 연예인들을 기용하던 '금복주 달력'은 2000년 들어 대거 러시아미녀들을 기용해 '안주의 세계화'를 기했으니, 그 또한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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