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스페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정열, 투우, 플라멩코를 떠올릴 정도로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다.
2002년 월드컵 8강전 이후 세계적 스타 군단 레알 마드리드의 명성으로 축구의 나라로도 다가오고 있으나, EU 주요 회원국으로서 스페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지금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이라는 단일 품목으로 소리없이 왕년의 강대국을 재현해 나가고 있다.
관광산업은 매년 35조원 이상의 엄청난 수입을 올리며, 타분야의 경상수지 적자를 모두 메우고도 남을 만큼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스페인 경제의 버팀목이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옛 식민지 중남미에 대한 경제적 진출 통로이자 유럽 교두보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등의 무대가 됐던 왕년의 문화적 수도 세빌랴와 오늘날 정치적 수도 마드리드 사이를 AVE로 불리는 초고속열차가 빠르게 연결하고 있다.
지난 4월 KTX 개통 후 문제점이 불거지자 우리 철도청은 프랑스 TGV와 독일 ICE를 들어 그 불가피성을 말하지만 4~5분만 연착해도 요금 전액을 환불해줄 정도로 정확하고 세심한-결코 스페인답지(?) 못한 시간관념임-이 나라의 고속열차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 안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스페인은 관광대국에 걸맞은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는 것이다.
돈 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를 비롯해 피카소, 달리, 미로, 벨라스케스, 고야 같은 미술의 대가, 음악계의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영화계의 부뉴엘, 알모도바르, 안토니오 반데라스, 불멸의 건축가 가우디, 기타의 명가 세고비아…. 이름만 나열해도 우리는 스페인의 문화적 저력에 놀라게 되고, 비로소 스페인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물경 1천개도 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매년 5천만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자원이 실은 이런 문화적 토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빰쁠로나 거리를 달리는 투우놀이, 발렌시아 지방의 화야(Falla) 축제, 100년 후에야 준공된다는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대성당, 쌀음식인 빠에야와 각종 포도주 등, 이 모든 것들은 틀림없는 스페인적인 것이며 뛰어난 관광자원이다.
유럽의 4대 영화제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도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며, 세계적 축구스타들을 스카우트해 선수이름이 박힌 유니폼 판매와 원정관람객 유치 등 큰 수입을 올리는 레알 마드리드처럼 축구 마케팅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스페인어가 국제 비즈니스계에서 영어 다음의 공용어라는 사실에 착안,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주요 도시에 수많은 공사립 어학원을 설치해 학생을 유치하는 것도 전부 관광업과 연계돼 있다.
스페인의 권위있는 일간지 엘 빠이스는 3년 전에 이미 관광객수가 매년 전년 대비 11%의 증가율을 보였고, 관광객의 수나 수입 면에서 5년 연속 기록을 갱신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에서 최대의 고용 창출은 관광산업에서 이뤄지며, 새로 등장하는 100개의 일자리 중 8개는 관광산업분야라고 엘 빠이스지는 밝혔다.
즉, 스페인 노동인구의 약 10%가 관광산업에 연계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2천달러 달성을 관광산업이 선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스페인 관광통상국은 관광객 수 증가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 관광상품의 질 향상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는 단순 휴양관광을 벗어나 문화관광, 농촌관광, 환경체험관광 등으로 다양화하고, 서부유럽 일변도에서 미국, 아시아, 태평양 및 중부유럽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2000년부터는 관광청 관리하에 관광품질관리소를 설치, 관광상품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다.
또 관광산업 활성화 5대 계획으로 관광정보 네트워크 구축, 자료의 체계적 수집 및 연계, 관광상품화 촉진, 품질 제고, 호텔활성화 촉진 등 부문별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관광수입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비록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리즘과 북아프리카 출신 불법 체류자들로 인한 치안 문제로 외국관광객의 안전 대책에 비상이 걸려있긴 하지만 스페인은 최근 유럽연합국 전체가 만들어낸 것보다 더 많은 일거리를 창출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넘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은 20세기 내내 쇠퇴와 답보를 면치 못하던 스페인이 다시 일어서는데 큰 동력이 되고 있다.
김우중(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어학부장)△1953년생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한국외대통역대학원 △한국스페인어문학회 부회장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립대 초빙교수 △BRICs사업단장 △대구스페인문화원 고문 △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