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무렵에 뉴델리 역을 출발한 기차는 인도의 북부, 파키스탄과 접경한 암리차르로 향한다.
시크교의 성지이자 본산인 암리차르는 서방교역의 요충지이자 1919년 영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중대학살사건으로 인도 독립운동이 촉발된 역사적인 곳이다.
차창 밖으로 역이 하나씩 지나갈수록 어둠은 점차 짙어진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넓은 밀밭이며 검은 더껑이가 진 용수로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드문드문 별처럼 돋아나는 농가의 푸른 불빛들. 이내 바깥은 완연한 밤이 된다.
나는 창밖에 무료하게 던져두었던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역에 기차가 멎는다.
양손에 잔뜩 짐을 든 승객들이 기차에 오른다.
신분을 상징하는 색색의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가 눈에 많이 띈다.
힌두교인들이 체구가 작고 마른 편인데 비해 시크교인들은 체격이 크고 우람하다.
턱수염까지 무성히 기른 모습은 가히 위압적이기까지하다.
무굴제국을 비롯하여 영국과 최후까지 투쟁한 그들의 용맹성을 알 듯도 하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장년의 남자와 소년이 건너편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본다.
예상대로 부자 간이다.
그러나 서로 말하는 폼이 형제처럼 보인다.
인도인들은 부자지간에도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낸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가부장적인 엄격함은 없다.
아마도 그건 절대적인 부성(父性)인 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한 할아버지가 있는 집안에 아버지가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아들과 함께 암리차르로 성지순례를 가는 중이라고 밝힌 장년 남자의 얼굴엔 어버이로서의 자긍심과 기대감이 어려 있다.
이것저것 물어오던 그는 무신론자라는 나의 대답에 놀란 얼굴이 되어 그럼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난 마땅히 대답해 줄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든 절대적인 신앙심을 가진 자가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욱이 대다수 한국인들의 삶의 목적이나 동기가 단지 '잘 살아보자'든가 '출세하자' 라는 걸 안다면 필경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잘 살아보자'는 말에는 다분히 상대 평가적인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즉 남들에게 보란 듯이 잘 살아야겠다는 저급하고 속된 자기 과시적 허영심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 생겨난 불만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간다.
과도한 욕심이 무리한 경쟁을 부르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타인에 대한 미움과 질시와 반목으로 치닫는다.
쉽게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좌절하고, 짧은 삶을 불평불만으로 보내게 된다.
타인을 상호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적대적인 투쟁상대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크든 작든 뭐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족을 얻으며 살아왔다.
권력이나 재력, 학력과 성적, 심지어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크기, 냉장고 용량까지 따지고 비교하여 이중 무엇이든 하나는 상대를 눌러야 속이 풀리는 천박하고 비정한 사회가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삶의 질이나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나 올바른 인격과 품성에 대한 평가는 아랑곳없지 않은가.
신 앞에서 누구든 평등하다고 믿는 인도인들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지 않는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평안과 자유로움을 맛보는 것도 모두 일시적이나마 경쟁적 사회에서 벗어나서 느끼는 심리적 해방감에 기인한 건 아닐까.
히말라야와 가까운 북쪽의 아침 기온은 예상보다 쌀쌀하다.
나는 역 앞의 페가소스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기차에 시달린 몸을 씻는다.
그런 다음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암리차르 대학살의 현장인 잘리안왈라 정원을 둘러본다.
영국군의 기총소사를 피해 수백 명이 뛰어들어 죽었다는 깊은 우물이 우울하게 비극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황금사원은 잘리안왈라 정원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원 입구는 전국에서 몰려든 시크교 순례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출입구를 지키는 창을 든 위병이 나에게 신발을 맡기고 머리에 터번을 두를 것을 요구한다.
임기응변으로 목에 걸린 머플러를 터번처럼 머리에 감고서야 성스런 사원의 출입을 허락받는다.
계단으로 된 출입구를 통과하자 한번만 몸을 담그면 죽지 않는다는 '암리차르(불사의 연못)'와 함께 휘황한 황금색 사원이 눈길을 끈다.
황금사원에서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의 자세는 경건하기 짝이 없다.
신을 향한 가이없는 숭배와 헌신. 아마 이런 맹목적인 신앙심이야말로 바로 인도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일 것이다.
뉴델리에서 기차로 타르 사막의 초입에 있는, 시가지 건물들이 대부분 푸른색이란 점에서 '블루시티'로 불리는 죠드푸르 역에 내린 건 동트기 전의 이른 아침이다.
고딕식 시계탑이 서있는 사다르 마켓에서 메헤랑가드(Mehrangarh) 성으로 가는 주택가 골목길은 우리네 70년대의 동네 아침 풍경을 그대로 닮아 있다.
골목을 비질하는 노인, 등교를 서두르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백열등이 밝혀진 작은 가게에 아침 찬거리를 사러온 아낙, 잠이 부족한 얼굴로 물을 길어 가는 젊은 여인, 골목길에 퍼지는 그릇 씻는 소리와 아이 깨우는 소리, 전깃줄에서 요란히 지저귀는 참새들, 집 앞을 흐르는 시궁창은 누추했던 지난날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구 시가를 굽어보는 높다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고색창연한 메헤랑가드 성은 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던 마하라자의 꿈과 욕망, 헌신적이던 인도 민중들의 희생을 보여준다.
성루에 올라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라본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정서적인 장소를 고르라면 난 선뜻 사막이라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막은 바람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비를 만드는 것처럼 사막은 바람의 시원(始原)이다.사진: 불사의 연못에서 목욕하는 시크교도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