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을 하자면 바르게 살아야한다.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바른말을 떠들면 세상이 믿지를 않는다.
양심이 흐려져 있으면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한다.
우리의 내부를 잘 관찰해보면 부끄러운 일이 너무도 많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데 바빠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부끄러운 줄을 몰라서 후안무치한 일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사회가 자꾸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사회정의, 사회정화를 부르짖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정화로부터 우선 해야 될 일이었다.
일제 때 일본이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 일본은 패전하고 일본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그 무렵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매일같이 글 쓰기 훈련을 한시간씩 시켰는데 하루는 날보고 교탁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웬 일인가 하고 나갔더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인즉 "너는 글을 참 잘 쓰는데 네 이야기를 써야한다" 라는 충고였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천둥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바로 두 달 전 8월 15일 일본이 절대로 질 리가 없다고 한 나였는데 어제 쓴 글에다가는 해방의 감격, 36년의 압박과 서러움, 조선의 자주독립……그런 이야기를 좔좔 써내려 갔던 것이었다.
훗날 내가 나이 들고 어떻게 조각을 만들 것인가 하는 일이 절실해질 때마다 번개치듯 그 일이 되살아났다.
"본대로 느낀대로 하라!"는 담임선생님 말씀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1950년 6.25가 발발했던 그 해 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신천지'라는 월간지가 있었다.
그 잡지에 '전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북한과 만주 땅의 군사배치 상황과 군사 움직임을 상세히 예로 들면서 남침전쟁이 일어난다는 신랄한 논고가 실렸다.
그런데 그 다음 호에 어떤 이가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아래 지난번 잡지에 실린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결론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글이 실려 나왔다.
그런데 몇 달이 채 안되어 이른바 삼팔선이 무너지고 사흘만에 인민군의 탱크가 미아리고개를 넘어왔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아세곡필(阿世曲筆)이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한탄을 한다.
휴전이 되면서 나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우리말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 사르트르 평론집이 출간되었는데 지금도 우리 집 서재에 꽂혀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북부는 독일군에 점령당하고 남부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군 점령 하에 있었던 북부사람들의 부역문제가 심각하게 등장했다.
가차없이 색출하여 처단했다.
사르트르가 글을 썼다.
'북부에 기차운전사가 있었다.
기차를 버리고 도망쳐야 했는가. 그 기차에는 독일군의 무기가 실려있었고 또 동시에 파리시민들이 먹어야 할 식량이 실려있었다.
그 기관사를 반역죄로 처형해야 옳으냐. 젊은 독일장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길을 찾는데 당시는 묵비권을 쓰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가리켜 주었다면 처단해야 했다.
그 청년장교가 프랑스사람 누구를 잡으러 가는 길인지, 그런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인륜이라는 게 있는데 길을 가리켜 주었다 해서 그 시민이 징벌받아야만 하는가…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
연합군도 으스대기만 하지 말아라!' 그런 흥미 있는 논설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면 사르트르의 그때 그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문득 생각난다.
심판이 없는 축구경기를 한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기가 될 것이고 오로지 이기는데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경기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한 일이다.
다같이 박수치고 환호하고 열광하는 게임, 관객들은 그런 경기를 보고싶은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나 저제나 하는 삶을 오늘도 살고 있다.
지나간 날들이 섭섭하여 잠시 옛 생각에 마음을 적신다.
최종태 조각가.서울대 명예교수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
전한길, 김건희 만나나…"방문 요청 받아, 죽을 만큼 범죄 심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