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아테네에서 보낸 일주일

지난 7월 그리스 아테네의 신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이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구체적 지식은 불과 몇 가지뿐이었다.

테오 앙겔로풀러스라는 이름의 괜찮은 영화감독과 '희랍인 죠르바'를 쓴 소설가 니코스 카잔챠키스의 고향 나라라는 것, 한 달 뒤면 하계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라는 것, 1인당 국민 총생산이 1만1천430달러(2003년)에 이른다는 것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여행을 떠나기 앞서 여행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떠나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여행이 지닌 기본적인 테마만을 지닌 채 새로운 시간, 새로운 풍경들과 부딪쳐 나가는 것이다.

예비지식과 사전 준비가 충분하면 그만큼 수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되 사전에 잘 조직된 여행은 누군가가 제공한 세련된 정보를 답습하는 것이어서 자신만의 여행이 되기 힘들다는 내 나름의 계산이 여기 깔려 있다.

아테네에서 내가 처음 한 일은 파르테논 신전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플라카 거리의 한 입구에서 버스를 내리니 눈앞에 거대한 돌기둥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도에서 확인하니 제우스 신전. 모든 신들의 왕, 제우스의 신전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사전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여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담장 밖에서도 훤히 보이는 그 유적을 보기 위해 나는 3유로(4천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담 안으로 들어갔다.

신들의 왕을 경배하는데 그쯤의 돈이 아까울 리가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한 언덕이 통칭 아크로폴리스로 불린다는 것 또한 현지에서 알았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언덕길은 세계 각지에서 밀려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나라말을 하며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여간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매표소 앞에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입장료가 12유로. 아크로폴리스를 거니는 동안 이 광장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보다 먼저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돈이었다.

일년 열 두 달 지천으로 몰려드는 저 관광객들의 입장수입이 도대체 얼마나 될꼬?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온 나는 고고학 박물관을 찾았고 미술관과 보석박물관에도 들렀다.

다음날 오전엔 시내 중심가인 신다그마 광장에 나가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내릴 곳을 놓쳤다.

다음 정거장에서 급히 버스를 내리니 눈앞에 동전박물관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내가 지니고 있는 지도에 없는 자그마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옛 동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행운이었다.

나는 한나절을 금화들과 동전들 사이를 거닐며 지냈다.

사실 그리스의 경제적인 외양은 세련됨과 거리가 있었다.

도로포장은 거칠었고 지하철 노선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짧았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하룻밤 80유로의 일급 호텔이었는데 엘리베이터에 층수가 표시되지 않았다.

'덜컥'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승객이 자신의 손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밀고 나오는 식이었다.

올림픽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경기장들은 채 완성되지 않았으며 공중전화에서 서울로 전화하기도 몹시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활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윤택해 보였다.

아침저녁 정원의 뜰에 모여 앉아 식구들이 담소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오후 시간에는 세상없이 낮잠 시간을 즐겼다.

저녁 식사시간이 두세 시간씩 이어졌으며 바닷가는 주민들로 붐볐다.

아테네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 나라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요, 문화유적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예술과 철학, 인문학의 꿈을 열렬히 사랑했던 조상들의 숨결이 그들의 역사 속에 존재했음이 이들의 삶을 보다 여유있고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었다.

좋은 문화를 후손에게 남기는 것, 한 민족 역사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곽재구 시인.순천대교수·문예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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