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야스쿠니 참배를 보며…

8.15 광복절이었던 어제 일본의 현직 각료, 전직 총리, 국회의원 등 60여명의 우파(右派) 정치인들이 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놓고 맞섰던 한.일.중 3국의 신경전을 의식 못할리 없으면서도 올해는 유난히 참배행렬이 더 길어 보인다.

왜 그들은 매번 주변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외교적 마찰을 일으켜 가면서까지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고 있는 자들은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다.

패전 후 1946년 5월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소의 판결에 따르면 엄연한 '군사범죄자'다.

합법적인 국제재판소가 20세기 인류 평화와 문명을 망가뜨린 범죄자들로 공식 단죄한 전범들을 공동묘지도 아닌 신사에다 봉안해두고 각료들이 참배까지 하는 일본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마디로 일본의 우익 지식층은 야스쿠니에 모셔진 전범들을 군사범죄자가 아닌 나라를 지키려다 운이 없어 전쟁에서 졌을 뿐인 구국의 영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국 영웅론'은 패전 직후 열린 군사재판에서 주장했던 변호인의 변론과 일치한다.

도쿄 스가모 구치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연합국 검찰측의 55가지 항목의 기소에 대해 혐의사실을 부인, 무죄를 주장하고 있던 200여명의 전범들에 대해 전범변호인단은 구국의 영웅 논리를 이렇게 폈다.

"태평양 전쟁 개시전에 이미 수년전부터 미국과 영국.네덜란드 등 구미제국은 일본과의 통상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자국내의 일본자산 동결령을 내림으로써 일본은 80여년간 쌓아온 무역 기반을 절반 이상 잃었다.

또한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을 금지시켰고 전쟁 1년 전에는 진주만에 미 태평양 함대의 주력을 집중시켜 일본을 의도적으로 압박해왔다.

미국 영국 등은 계획적으로 일본에 경제 제재를 가해왔으며 그 결과가 전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서도 계속 전쟁능력이 없는 일본에 압박을 가해왔다.

그 증거로 전쟁 전 일본의 연간 철강 생산량이 미국의 1개월 생산량보다 적었다.

고의적 경제압박이 없었으면 감히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못낼 상황이었고 국력상 장기전에서 지게 돼 있었던 전쟁을 유도했다.

결국 태평양 전쟁은 불가피한 자구행위였고 따라서 강국의 위협에 자기방어를 한 일본 군부와 도조 내각 각료들은 전범이 아니라 구국 영웅이다.

"

변호인단의 변론대로라면 일본은 서구 열강들의 세력확장과 세계 경제 제패 노림수의 첫 타깃이 됐고 자위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계획적으로 유도해 꺾어버린뒤 아시아 장악의 명분을 쥔 서구강국들이야말로 전범이라는 논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런 서구열강의 전범들과 맞써 싸우다 국력이 약해 패전하고 사형당한 구국영웅들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에 모셔도 모자랄 영웅들이 아닐 수 없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일본 우익 지도층의 야스쿠니 참배의도의 밑바닥에는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폈던 변호인단의 그런 억지 논리가 그대로 숨어있다고 봐야한다.

그렇게 볼때 왜 그들이 야스쿠니 참배에 그토록 집착하고 자부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릴 수 있다.

역사는 항상 이긴 자와 강자의 논리로 해석되게 마련이다.

진실이냐 아니냐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과 진실 바꾸기를 시비 걸어오고 일본이 지난날 전범들의 범죄역사를 구국적 자위권 행사로 미화 시키는 것도 결국은 패전 후 키워온 국력 증강과 맞물려 나오고 있다고 봐야한다.

일본정치지도자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던 날 우리는 광복절 기념사에서 고구려역사나 야스쿠니 참배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이 내 나라 내 집안 식구의 과거역사만 따지겠다고 열변을 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봤다.

한국의 현대사를 아류적 시각만으로 재단하고 심판하고 해석할 수 있는 또 그렇게 해도 될만큼 존경받는 강자나 이긴 자가 우리사회에 과연 존재하는가. 있다면 우리는 그 강자에게서 도쿄 전범재판소 변호인단처럼 정치목적의 오류나 억지 논리를 펴는 것만은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김정필 명예주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