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동포구 80리\'

섬진강 하구에서 하동읍을 거쳐 화개면으로 이어지는 '하동포구 80리' 길. 이 뱃길 따라 나란히 달리는 19번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치있는 길로 알려져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아름답고 상쾌하고 편안하다. 어머니처럼 편안한 섬진강과 아버지같이 듬직한 지리산이 서로 뜨겁게 부둥켜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산기슭은 강기슭이 되고, 강기슭은 산기슭을 이룬다. 섬진강을 휘감아 도는 낭만 넘치는 하동포구 80리 드라이브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동~구례 구간.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동IC에서 나와 읍으로 향하는 길가엔 '원조 재첩'이란 식당 간판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많이 띈다. 강의 동쪽에 붙어 있어 하동(河東)이라고 부르는 하동땅 구경은 이 길을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가끔 눈길을 주기만 하면 된다.

요즘 섬진강은 본연의 아름다움에다 생명력까지 넘쳐난다. 그 중심엔 재첩이 있다. 하동 재첩잡이는 19번 도로를 따라 하동대교 앞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월부터 추석을 전후한 시기까지이다. 물 때도 기다려야 한다. 섬진강의 수위가 무릎에서 허리 정도 찰 때쯤이 적당하다.

하동대교 북쪽에는 섬진강물에 몸을 담근 주민들이 '거랭이'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 강바다에 숨어있는 재첩을 캐낸다. 원시적이지만 삶의 억척스러움이 묻어나는 광경이다. 강 뒤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는 인간과 자연이 빚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강물이 빠져나가는 간조 때 이곳을 방문하면 강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재첩을 잡는 어민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하동군청을 지나 경찰서 앞 오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하동 송림에 이른다. 조선시대 때 방풍방사용으로 심은 소나무 숲이 유원지로 변했다. 7천여평 부지에 700여 그루의 아름드리 노송들이 시원한 숲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강쪽으로는 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어 산림욕과 함께 강수욕을 즐길 수 있다.

강변은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 해질녘에는 강둑 벤치에 앉아 금빛 물결로 수놓은 강변을 거닐어도 좋은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거닐면 섬진강을 좀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맑고 깨끗한 강물에 들어가 재첩을 잡기도 한다.

장승과 은빛 백사장이 아름다운 평사리공원을 지나 오른쪽 지방도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악양면 평사리가 나온다.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흘러내린 섬진강변에 있는 평사리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 그러나 애석하게도 토지의 '서희아씨'가 살던 최참판댁은 없다.

집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복원한 최참판댁은 악양면 상신마을의 조부잣집을 모델로 삼아 작가가 상상력으로 지은 허구의 공간이다. 그런데도 평사리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줄을 잇는다. 소설 토지의 감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내려다보는 악양 들판과 섬진강의 전경이 특히 아름답다.

최참판댁을 뒤로 한 채 다시 구례쪽으로 향한다. 액셀레이터를 몇 번 밟지 않아 300여m가 넘는 다리가 나타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와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 사이 섬진강을 잇는 남도대교다. 2003년 7월 준공한 영.호남 화합 상징다리이다.

남도대교 밑에서는 은어낚시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물에 반쯤 몸을 담근 채 활처럼 팽팽한 낚싯대를 들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떠올리게 한다. 은어낚시는 은어를 미끼로 쓴다. 은어의 코에 황소처럼 코뚜레를 걸고 낚싯바늘을 꼬리에 매달아 던지는 '놀림낚시'. 은어는 자신의 영역이 확실해 다른 은어가 들어오면 달려들어 온몸으로 부딪쳐 쫓아내려다가 바늘에 지느러미나 몸뚱이가 걸린다.

수원서 왔다는 박경환(47.자영업)씨는 "은어하면 섬진강이죠. 이곳이 은어낚시의 가장 좋은 포인트"라며 "1시간만에 20~25cm 크기의 은어를 15마리나 잡았다"며 즐거워했다.

다리 바로 옆에 화개장터가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어야 할 것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장터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한데 뒤섞인 정감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호남의 정겨운 만남의 장이고,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하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국밥집, 도토리묵, 재첩국집, 주막, 엿장수, 산나물, 녹차 등의 특산품 등이 있어 훈훈한 인심을 주고받는 만남과 화합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쌍계사쪽으로 가면 차나무시배지가 나온다. 화개천의 양쪽 산기슭에 야생상태로 된 차나무밭이 10여km나 뻗어 있다. 보성차밭처럼 가지런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그러나 차의 맛과 향만큼은 어느 지역 차보다 뛰어나다. 여기서 차 한 잔을 마시면 섬진강변 낭만의 드라이브가 완성된다.

★먹을거리

"섬진강 은어는 다른 은어와는 달러. 수박향이 강하고 비린내가 전혀 없거든. 그래서 전국각지 사방팔도에서 은어가 나오지만 섬진강 은어를 은어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쳤던 거여"

화개면 탑리 보건소 뒤에 있는 벚꽃식당(055-850-3542) 주인 김점주(70)옹은 50년간 은어를 잡아온 섬진강 은어잡이의 산증인이다. "자연산 은어는 3일을 못살고 죽는다"며 "그래서 항생제를 먹여 20일여일이나 사는 양식 은어와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며 자연산을 강조했다.

껍질이 얇고 살이 여물어 씹는 맛이 있다고 했다. 벚꽃식당은 김옹이 잡은 자연산 은어만을 취급한다. 자연산 은어는 웬만한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 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하다. 특히 신선한 수박향이 진하다. 이집에서는 은어회를 비롯해 숯불에 구운 은어구이, 그리고 은어튀김을 내놓는다.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마산 못미쳐 함안.진주방향- 진주- 순천방향으로 가다 하동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최재수기자 bio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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