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

존 매들리 지음/창비 펴냄

사례 1. 제약기업들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이를 오가며 터무니없는 이중기준을 적용하면서 장사를 한다.

프랑스령 아프리카에서는 메클로자인이 함유된 약이 메스꺼움과 임신중 구토를 방지하는 약으로 선전되었으나, 프랑스에서는 메클로자인의 안전성에 대한 증거가 충분치 않아 임신중에는 메클로자인을 처방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사례 2. 유니세프(UNICEF)의 1995년 보고서 '세계 어린이들의 상태'에 의하면, 1990년에 생후 6개월 동안 모유를 먹었다면 죽지 않았을 아기들이 모유를 먹지 못해서 100만명 넘게 죽었다.

유니세프의 이전 보고서는 "젖병으로 우유를 먹는 아기들이 생후 6개월 동안 모유를 먹는 아기들에 비해 어린 시절에 죽을 가능성이 25배나 높다"라고 지적했다.

모유대체물의 판촉은 세계에서 가장 약한 어린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초국적 우유기업들이 이 판촉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다른 기업들에 영향을 끼칠 능력이 있는 기업을 일컫는 초국적기업. 민영화·자유화·전 지구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들 초국적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GE, 인텔, 포드, GM,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에서부터 로얄 더치/쉘, 엑손, 카길 등 그 크기에 비해 덜 알려진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은 초국적기업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초국적기업에서 10여년간 일했던 저자가 세계 40여개 개발도상국들을 직접 여행하며 조사한 끝에 펴낸 '초국적기업, 세계를 삼키다'는 개발도상국 빈민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초국적기업들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 든 사례들은 이 책에 나오는 초국적기업들이 저지르는 잘못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초국적기업, 혹은 거대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수천만 민중,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 저자의 통렬한 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초국적기업은 자국의 주주만을 위할 뿐 개도국 민중의 이해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파푸아뉴기니의 산림이 훼손돼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인도네시아의 헐벗은 아이들은 초국적기업의 현지공장에서 장난감과 옷을 만든다.

초국적기업이 식물종에 대해 특허권을 획득하는 바람에 인도 농민들은 수세기동안 사용해온 씨앗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만 한다.

저자는 초국적기업들이 제3세계 빈민들의 삶의 토대인 자원을 파괴하면서 지역경제와 문화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고발은 물론 정부, 생산자, 소비자, 주주 등이 거대기업들의 횡포와 권력남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안들도 제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규제조치를 망설여서는 안되며, 각국의 비정부기구(NGO)들은 초국적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감시하고 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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