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낯선 땅 외로운 투병 "말동무가 그리워요"

부모를 여읜 뒤 자유를 찾아 탈북한 어린 여성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젊은 베트남 노동자가 나란히 같은 정신병동에서 외롭게 투병하고 있다.

국내에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자 행렬이 잇따르는 요즘, '코리안 드림'의 그늘진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일 오후 대구시 중구 남산2동 적십자사 대구병원에서 만난 '북한 처녀' 박영미(가명'20)씨.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체격에서 성장이 멈춘 듯한 그녀는 지난해 탈북해 서울의 탈북자 집단 생활시설에서 지내던 중 환청과 식사 거부, 수면장애 등 정신분열증 증상이 나타났다.

아마도 탈북 과정에서 중국의 공안(公安)에 적발되는 바람에 겪은 6개월 간의 수감 생활이 병을 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씨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다 먼저 탈북한 이모가 사는 대구로 옮겨와 지난 12일 입원했다.

그녀는 처음 입원했을 땐 식사는 물론 의사와 대화조차 꺼렸으나 요즘은 하루 세끼 꼬박 먹으며, 의사나 간호사들과 짧은 대화는 나눌 정도이다.

그러나 기자가 말을 건네자 인사만 꾸벅하고 "빵 먹으러 간다"며 간호사와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다.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은 데다 낯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란 게 간호사의 설명.

주치의인 권영재 병원장(정신과 전문의)은 "그녀를 치료하는데는 약물과 의료진의 보살핌만으론 부족하다"며 "따뜻한 가슴으로 이질적인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말동무가 필요하다"고 아쉬워했다.

베트남 하노이 출신 산업연수생 훼우(24)씨는 한달 전에 입원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3년 전. 그는 입원하기 전까지 경남 김해의 신발공장과 경산의 섬유공장 등지에서 억척스럽게 일해 모은 돈을 고국에 보냈다.

땅을 사서 부모님과 함께 살집을 마련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저축한 돈은 2천여만원.

그러나 자신의 돈을 맡아왔던 삼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 돈이 사라져 버렸다.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는 술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환자 신세가 된 것.

병세가 좋아진 훼우씨는 요즘 몇푼 남지 않은 돈으로 간식을 사서 다른 환자들과 나눠 먹으며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

하지만 연수기간이 끝나는 내년 봄 병 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할 그의 얼굴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베트남에 돌아가서 돈을 벌고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홍삼열 원무과장은 "적십자병원엔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저소득층 환자들이 70~80%에 이른다"며 "치료비는 국가에서 실비로 지원되지만 사람이 그리운 이들에겐 자원봉사자나 후원자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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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사진: 대구 적십자병원 정신과 병동에 입원 치료 중인 탈북자(왼쪽), 베트남 산업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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