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國恥日을 기념일로

지난 23일은 참 좋은 날이었다.

탁구의 유승민 선수가 세계 1위라는 중국의 강적을 이기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을 잡으려면 승민이어야 한다"며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하고도 출전권을 양보한 뒤 후원인으로 나섰다는 김택수 코치의 이야기가 못잖게 감동스러웠다.

"왕하오는 부담이 컸고 나는 부담이 없어서 나온 결과일 뿐 실력에서는 내가 밀린다"는 말로써 유승민도 선배의 덕을 이었다.

이런 감동은 같은 날 기계체조 개인 결승을 치른 러시아의 네모프 선수가 더 고양시켰다.

엉터리임이 분명해 보이는 심판들의 판정으로 관중석이 '소요 상황'으로 빠져들 즈음 그는 '영웅'의 모습을 드러냈다.

부당 판정의 피해자인 그 자신이 나서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세로 막아 상황을 진정시켜 낸 것이다.

실력에서는 여전히 뒤진다는 말로써 유승민은 진정한 챔피언이 됐다.

출전권을 양보함으로써 김택수는 금메달리스트로 높이 섰다.

네모프는 금메달을 잃었으나 영웅이 어떤 것인가를 시연하면서 심판들을 꾀죄죄하게 대비시켰다.

올림픽에는 이같이 여러 감동이 있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TV 앞으로 몰려들게 하는 모양이다.

우리 국민들도 남의 나라 선수들 경기 모습까지 놓치지 않으려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신과의 상관성으로 따지자면 비교가 안 될 혼란스런 국내 상황은 던져둔 채 말이다.

어쩌면 그 꼴이 보기 싫어 일부러 올림픽에 자신을 더 열심히 밀어 넣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잔치도 가로막을 수 없는 '현실'

하지만 잔치는 오래 갈 수 없는 법. 화면 속 환상에 빠져 있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그 사이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사흘 뒤면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우리 모두는 다시 2004년 한국의 현실로 되돌아와야 할 참이다.

괴로워도 할 수 없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어떤가. 과거사 정리를 놓고 이를 가는 두 무리,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목숨 걸 듯 대드는 양측, 또 그렇고 그런 정치판 일들로 즐거운 소식이라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것이 그 모습이다.

인터넷 신문들의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다 서늘할 지경이다.

적개심이 그득하고 증오가 소름 돋게 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원한 서리게 했다는 말인가.

이러다간 정말 찢어져 버릴지 모른다.

우리 스스로 찢는 일이야 없겠지만, 내부 결속력이 떨어진 것을 틈 타 외부의 힘이 사방에서 잡아당겨 버린다면 허약한 몸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형벌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것이 거열형(車裂刑) 아니던가.

과문한 필자인데도 그럴 위험에 대한 경고를 들은 것은 이미 10년 전 미국에서였다.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그곳 독립운동 유적지를 취재 갔다가 만난 현지의 한 현대사 학자는 "동북아 국제 정세가 19세기 말 우리나라가 패망하던 당시 형세로 U턴했다"고 그때 벌써 긴장했었다.

일본이 극우 강대국화 하고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함으로써 한국은 러시아.미국 등 4개 강대국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는 것이었다.

◇ 논쟁, 사랑이 바탕에 깔려야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특출한 방편을 내놓을 역량이 기자에겐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나라와 사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회복하자는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사랑을 깔고 한다면 논쟁은 진지한 토론이 될 것이고, 그 성과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논쟁이 싸움으로 악화되는 것은 그 바탕에 개체나 무리의 이익을 지키거나 달성해 내려는 불순한 감정이 끼이는 탓 아니겠는가.

기자는 한 세기 전 우리가 나라를 잃었던 날, 그 국치일을 이 시점에서 다시 기억해 내고 기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광복절이다 제헌절이다 해서 좋은 날만 기념해 들뜨고 마칠 일이 아니다.

국치일을 처절히 기념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8.15 패망일'마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되새기고 있는데 우리는 국치일조차 잊고 지내서야 되겠는가.

올림픽은 이제 사흘 뒤 끝난다.

마침 그 하루 전인 29일이 우리의 국치일이다.

정말로 마음을 새롭게 해 결연하게 현실로 돌아가자.

朴 鍾 奉(경북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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