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1진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그의 부대는 여태껏 조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군대였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무사가 아닌 상인 출신이며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싸움에 능하지 않았다.
고니시는 또 세스페데스란 포르투갈 신부를 군목으로 대동하고 있었다.
고니시는 조선 출병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전 두 달만에 평양성을 점령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고니시의 군대는 평양성에서 멈췄다.
선조 임금이 국토의 끝 의주까지 피신해 명나라에 망명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그는 추격전을 펼치지 않았다.
고니시는 평양성에 들어앉은 채 7월 17일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공격할 때까지 한달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의 한 군사전문가는 이와 관련 "보급에 차질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니시가 평양을 점령할 무렵 이순신 함대가 일본 함대를 연이어 격파했다.
게다가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 왜군의 배후를 괴롭혔다.
보급이 끊어진 고니시는 진군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조선 장군은 "일본군이 평양성을 점령할 당시 성내에는 조선군이 남긴 양곡 수십만 섬과 무기가 비축돼 있었다"며 "보급로가 끊어졌기 때문에 진군을 중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왜병 장수로 출병해 조선군에 투항, 항왜군이 된 마시히로는 "고니시는 계속 진격할 경우 명나라 군대가 투입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오직 조선이나 명나라와 대규모 무역로를 개척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마시히로는 특히 "일본은 성이 함락되면 영주는 할복을 하거나 도피한다.
성을 버린 영주는 이미 존재가치가 없다.
간혹 항전하는 무사들이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주인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생업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조선 국왕이 도망친 만큼 고니시는 이미 전쟁이 끝났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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