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민심과 민생을 보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과, 지난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된 것은, 변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집권자가 바뀌고 집권정당이 소수당에서 다수당으로 바뀐 결과의 과정에 국민들의 변화 기대치가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변화 속에 희망과 진보가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누구나 얼마간 변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정체와 퇴영에 반대하는 개념으로서 변화이다.

그것을 달리 정치적으로 개혁이라 부르든, 혁신이라 이름 붙이든, 국민들은 사회와 국가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썩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차원에서 변화를 주문하는 것이다.

결코 중국의 문화혁명 같은 난도질이나 해방공간의 살육극 같은 혼란과 갈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들이 현재와 같은 난국을 주문했던가. 지난 양대 선거는 구태의연한 파쟁과 부패로부터 정치를 보다 깨끗하고 능률적으로 변화시켜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많이 개재됐던 것은 사실이다.

정략과 정쟁, 엉뚱한 일들로 방향을 일탈한 정치와 정치인들이 '국리민복'이라는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가기를 바란 것이었다.

정치적 선동가들이 가지고 놀기 좋고, 젊은이들을 공연히 피끓게 만들기 쉬운 민족과 통일, 이념과 체제 논쟁을 야기해서 온나라를 난리통으로 만들라고 했던 것이 아니다.

간신히 비루함을 벗고 이 나라를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선배세대의 공든 탑을 묵사발로 만들고, 가까스로 마련한 초가삼간을 태워 버려도 좋다고 국민들이 주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지난 대선과 총선은 국민들의 보편적 변화 욕구가 표출되긴 했지만, 자기편을 무조건 찍는 종래의 지역적 표대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민들은 특별한 이념적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집권세력과 어용 방송을 비롯한 주변 세력들은 국민들이 엄청난 변혁을 요구하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듯 아전인수, 견강부회했다.

민주화와 인권, 통일이란 말하기 좋은 명분을 방패막으로 치고, 반미 친북 좌파적 언행과 정책을 간단없이 던져왔다.

아마도 최근 나라를 들쑤셔놓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그 결정판이 될 듯하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DJ 후계자에 대한 호남지역의 몰표에다, 행정수도라는 뜻밖의 횡재를 만난 충청권의 지지가 보태졌기에 가능했다.

노 후보의 캐릭터가 다소 작용했지만 당락은 지역대결 구도가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노사모와 일부 언론, 이른바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반미 촛불시위를 극대화하고, 스팸으로 인터넷을 뒤덮는 선전선동술로 일시 국민들을 착시현상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종전대로 지역감정에 기대어 표를 찍었을 뿐이다.

총선도 마찬가지다.

탄핵 바람이 불었으나 결과는 지역 구도대로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 지지기반에다 행정수도로 고무된 충청도의 지지를 얻어 다수당이 됐다.

수도권의 의석수 변화도 유의할만한 민심 변화로 읽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의 약진만이 작은 변화의 의미가 있을 뿐, 4월 총선은 종전의 지역대결 구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선거와 달랐던 부분이라면, DJ의 후계자가 영남출신이라는 사실이 표심을 약간 헷갈리게 했던 것 뿐이다.

따라서 386.전대협 출신 등 운동권들이 대거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두고 그들의 이른바 '민주화 운동' 또는 '통일 운동'을 국민들이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오해해선 안된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좌파적 또는 친북적 성향이 좋아서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총선과 대선의 민심을 오인해서도 안되고 오도해서도 안된다.

서민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서 옛날 같으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가 됐다.

전 국민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꼴을 봐야 경제가 나쁘다 할 것인가.

이런 형편에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그 저의를 너무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70%이상의 국민들이 보안법 완전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좌경화와 간접침략을 막을 장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심이다.

소리 없다고, 절대다수 민심을 능멸하려 들어선 안된다.

김재열(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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