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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건축 어떻게 세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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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건축, 프랑스 신부·미국 선교사들 설계·감독

대구지역 건축의 경우 개항 이후 전통적 제작시스템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서양식 건축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훈련된 기술자나 목수가 없었기 때문에 설계나 감독은 주로 외국인 기사들에 의해 이뤄졌다.

종교계 건축은 프랑스 신부와 미국 선교사들이 설계·감독을 맡았고, 특히 중국인 벽돌공과 목수들이 그 밑에서 공사를 담당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1901년 5월 로버트 신부는 서울 명동성당을 건축했던 중국 기술자들을 동원해 '계산성당'(중구 계산동)을 세웠고, 1918년 드망즈 주교는 역시 중국 기술자를 동원해 '성모당'(중구 남산동)을 건립했다.

'성요셉의료원'(중구 남산3동), '대구동산병원 구관'(중구 동산동), '구세군 제일교회'(중구 종로2가)',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구관'(중구 남산동) 등은 모두 중국 기술자들이 시공한 건물이다.

1913년 천주교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주교의 주선으로 중국 산둥성 출신 건축기술자들이 대구에 와 종교 건축물을 시공했고, 이들은 1930년 초부터 '쌍흥호'란 시공업체까지 설립해 상당수 건축공사에 참여했다.

191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총독부 산하 일본인 관리들이 설계·감독하고, 일본 건축업자들이 시공을 맡은 것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들 중국과 일본 기술자를 동원해 사택, 교회 등을 건축했다.

'계성학교'(중구 대신동) 아담스관, 맥퍼슨관, 핸더슨관은 모두 중국 벽돌공과 일본 목수들이 시공한 건축물이다.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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