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문번역 외길 영남대 이장우 교수

"국가경쟁력은 溫故知新에서 나와"

중국과 한국의 고문(古文) 번역에 40여년을 바쳐온 영남대 이장우(李章佑·64) 교수. 그가 1997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2000년에 내놓은 '고문진보(古文眞寶)' 번역서 1권이 2003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연말 내놓은 2권도 최근 2004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연달아 선정됐다.

그동안 단순작업으로만 분류해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던 국내 학계의 풍토에서 학자로서의 명예나 자존심을 세우는 일 대신 번역작업을 고집하기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중국문학, 그 중에서도 문학이론 전공으로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박사학위, 국립 대만대학의 석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그가 이론연구 대신 번역 일을 자처한 것은 오히려 그런 풍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론공부를 위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을 많이 접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부분 국내 출판가에 나와있는 우리말 번역서나 해설서가 일본어나 심지어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 글로 옮긴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이 교수는 "지식기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경쟁력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살릴 때 더욱 커질 수 있다"며 "근대이전까지 동양문화권의 변방에 있었던 일본이 오늘날 아시아 전체를 대변하는 나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메이지(明治)유신 때 중국고전의 대대적 번역작업을 정책적으로 시행해 동양학을 완전히 소화해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 결과 서양사람들이 동양학을 공부할 때는 의레 일본어로 번역된 동양사상이나 역사를 배우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일본식 사고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중어중문학과 교수 및 학부생, 대학원생들과 함께 1994년부터 매년 한 해 두 번씩 '역총(譯叢)'을 발행해오고 있다.

한 학기동안 학과구성원 전체가 중국 및 한국의 고전을 오늘날 독자들의 수준에 맞게 번역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는 퇴계 이황이 지은 시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작업을 94년부터 해오고 있는 이 교수는 고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한학강의도 해오고 있다.

일주일에 나흘은 영남대 민속원 내 의인정사에서, 그리고 하루는 대구 시내에서 저녁 2시간씩을 할애해 오고 있다.

내년 3월이면 정년을 맞는 이 교수는 퇴임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한시를 영어로 번역한 '한국한시선집(韓國漢詩選集)'을 출간해 전 세계 서점에 꽂히게 하는 일을 꼽는다.

이를 위해 한국 문학번역재단으로부터 1천500달러의 연구비 지원을 확보해 놓은 그는 시인이자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맥칸 박사와 공동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과 중국의 고전을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항상 대학신입생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 번역하고 또 해설을 덧붙이려 노력한다"는 이 교수는 "독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독자를 찾아가는 번역작업에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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