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조 때 정승까지 지냈던 권람은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어 동료들 중에 단연 두각을 드러냈지만 과거에는 여러 번 낙방했다.
주위에서 위로하면 그는 "급제하고 못하는 것은 다 운명이 아니겠는가"라고 호방해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그가 46세에 정승이 된 것도 이런 도량 덕분이라고 주위에서 칭찬했다고 한다.
17일 대입 수능시험이 치러진다.
수험생이나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나 옛날 과거시험 못지않은 긴장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수능시험이 무슨 직업이나 직급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과 학과가 결정되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의 졸업장이 사회 출발점을 다르게 만드는 현실이니 이는 불가피한 노릇이다.
권람의 경우처럼 매향 호방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러나 시험이 임박한 지금쯤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사회가 엄혹해지면서 대학입시는 이제 진정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해졌다
대학 입학과 함께 진로와 취업을 걱정해야 하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은 끊임없는 자기 발전을 요구한다.
공부를 놓으면 언제라도 도태되고 마는 평생 공부의 세상이다.
수능시험 정도를 못 이겨내서는 결코 버틸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수험생들을 겁주자고, 맥 풀리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공부, 치러야 할 수많은 시험에 비하면 차라리 쉽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가 곧 도태를 의미하는 사회에 비하면 한층 여유로운 여건이다.
수능시험만 치르고 나면 대학 1, 2학년 때까지 적당히 공부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잡기에 빠져들며 청춘을 소모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대학입시가 끝나는 순간부터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역시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공부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대로, 정해진 과목을 차례차례 밟아야 하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원하는 책을 고르고, 마음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하는 공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하려는 노력은 늦춰서도 안 되고 조급하게 해서도 안 된다.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다.
'
선현들의 호학(好學)을 쉽사리 따라잡긴 힘들다.
그러나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지금이라도 공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대해 보자. 아직 먼 배움의 길이 남았지만 이번 시험만 끝나면 내가 원하는 공부, 재미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 보자. 수능시험이 꼭 괴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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