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빈곤의 예방과 치료

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게 된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말은 재활후견기관, 재활원 등이며, 몸이 불편한 이들의 재활치료를 돕는 기관으로 오해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오해를 받는 일이야 웃을 수 있지만, 사회적 무관심의 한 증거가 아닌가 생각되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다.

소외계층의 문제, 충분치는 않으나 국가가 책임지는 문제라고 미루어,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실태를 눈감아 버린다는 느낌이 그러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생활보호대상자 가운데 그나마 건강이 양호한 이들에게 '일을 통한 생계급여'를 받도록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그 조건이 이른바 '자활근로'이며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자활 자립'하도록 돕는 기관이 자활후견기관이다.

이런 기관이 전국에 230여개가 넘고, 기관종사자 1천여명, 조건부 수급자 1만여명 이상이 각각 사업단을 구성해 일자리 혹은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절대빈곤층'이 그것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집단인 것이다.

자활후견기관의 전신은 법 제정 이전인 1996년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자활지원센터이며, 이 센터의 모델은 주로 도시 빈민운동의 일환인 생활협동조합 또는 주민공동체운동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100여년을 지배해 온 빈곤개념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 관한 것이며 절대적 빈곤계층을 구휼하기 위한 비용을 산출하는 근거를 빈곤선이라고 한다.

국가는 절대빈곤층을 선별해 빈곤선에 근거한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왔다.

이 절대빈곤층이 빈곤선을 넘어 생활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운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빈민운동가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실패감'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또한 당장의 경제적 호전가능성도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그 일환이 교육과 시장을 아우르는 생산공동체였다.

경영과 자본의 부족으로 이 운동이 소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위기에 있을 때, 정부의 지원과 이 운동의 가능성을 접목한 것이 자활지원센터였다.

그리고 2000년 이후 꾸준히 이 기관은 늘어나 현재의 숫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문제는 정책운용, 실행단위, 시대적 흐름의 3박자가 이 기관들을 통한 결실과 가능성을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빈곤선을 정하고 그것을 지원하려면 필연적으로 예산이 필요하다.

예산은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각종 형식과 실적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종종 형식은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 현실은 자활후견기관이 만나는 '사람'들의 현실이며, 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질이나 능력은 요구받은 실적을 충족하기 어렵게 한다.

그리고 자유경쟁시대라고 하는 세계의 질서는 더 이상 절대빈곤층의 생계보장에 우호적이지 않다.

'능력 없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여,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아 스스로 자립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기존의 시장을 흔들어 가진 자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1967년도에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율은 85%나 되었고, 현재는 7%내외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가난에 대해 둔감해져 있을 수 있다.

요구하건대 국민 대부분이 둔감해지고, 잊고 싶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정책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빈곤계층은 점점 광범위해지고, 중요한 사회문제는 이런 과정 가운데 발생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지원하는 부담에 앞서 우리지역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기관의 존재이유를 알고 나아가 협력할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다.

혜택만 받으려는 문제집단으로 빈곤계층을 규정하지 말고,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였는가를 먼저 이해할 일이다.

빈곤의 대물림이 단지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의 개인적 문제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정치이자 사회복지의 시작 아닐까.

송애경 전 포항여성회장·포항남부재활후견기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