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천리 일대 신경주역사 역세권 개발 파장

고속철탓 땅값요동 일손놓는 들뜬 農心

조용하고 한가롭던 마을이 경부고속철 경주역사가 들어서기로 결정되면서 '고속철 신드롬'에 빠져 흔들리고 있다.

외지인들이 들락거리면서 땅값이 오르고, 일부 주민들이 고가(高價)에 땅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관심이 온통 땅에만 몰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답팔고 시내로 나가 사업을 차렸다가 몇 달만에 손을 들면서 땅 잃고 마음 잃는 사람까지 생겨나는 등 섣부른 고속철 기대심리로 지역사회가 피폐해지고 있다.

▧계획만 거창

경부고속철 경주역사와 함께 개발될 예상지역은 건천읍 화천리를 비롯해 모량, 방내, 광명 일대를 통틀어 대략 1만1천여필지 31.77㎢ 가량이다.

2010년 경부고속철 개통에 맞춰 준공 예정인 화천리 신경주 역사(驛舍)와 함께 이 일대 4.5㎢(136만평)가 역세권 개발예정지구로 꼽히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 18일 발표한 광역개발전략에서 "고속철 역세권을 신시가지 형태로 개발하고 특히 경주권은 문화관광 산업의 혁신거점 지역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이 일대에 대단한 무언가가 들어설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경주시 관계자들은 "이는 순전히 장기계획일 뿐 언제, 어떤 식으로, 누가, 무슨 돈으로 할 것인지 등의 구체적인 부분은 전혀 나온 것이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한 간부 공무원은 "지금까지 나왔던 무수한 개발 계획 중에 경주와 관광산업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발표가 있었느냐"며 "이를 믿고 당장 거대한 무슨 발전이 보장된 것처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말을 종합하면 고속철 개통과 역사 건립 이후 이 일대에 대한 개발전략은 수립 중이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모두들 땅값 이야기만

정부는 지난 9월4일부터 오는 2009년 9월3일까지 이 일대를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었다.

고속철 역세권 개발가능성이 예상되면서 종전 10만~15만원대이던 이 일대 땅값은 20만~30만원대까지 올랐다가 이제 아예 거래조차 없다.

경주시 지적과 관계자는 "한때 하루 거래 건수가 30건에 이르던 때도 있었으나 허가구역 지정 이후 사실상 모든 거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후 현지에서는 '실제 땅값'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경주시 한 직원은 "주민들은 아직도 30만원은 넘는다고 말하지만 이는 순전히 호가(呼價)일뿐 실제 거래가 없어 잘라 말할 수 없다"며 "허가제 이후 다소 내렸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역세권 개발 기대를 노리고 잇따라 문을 열었던 부동산 중개업소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공식 업소만 8개에서 5개로 줄었고 이마저 개점휴업 상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피멍이 들었다.

물론 주민 입장에서는 아무 계획도 없던 것보다야 낫겠지만 갑자기 북적거리다 일시에 조용해져 버린 탓에 심리적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일부 초기에 넘긴 사람들은 구석진 땅도 30만원대에 팔았는데 지금은 알짜배기도 이 값만 못하다"는 등의 땅값을 둘러싼 말들이 떠돌면서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땅을 사들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울산시민들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일대가 '경주속의 울산땅이 돼 버렸다'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이 일을 우야노."

화천리 들길에서 만난 주민 김모(66)씨는 "이 일을 우얄끼고?"라며 걱정부터 했다.

몇 안되는 젊은이들은 땅값이 오를 대로 올랐다거나,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일손을 놓고 있다는 것. 게다가 내년부터 쌀 수매제 폐지방침이 확정되면서 이참에 농사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리겠다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사람 둘만 모이면 땅값 얘기니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면서도 "개발될 때 개발되더라도 그 날까지는 농사를 지어야 할텐데…"라며 시름을 감추지 못했다.

이모(56)씨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외지인들의 '입질'은 여전해요. 단지 거래가 없을 뿐이지요." 이씨는 눈만 뜨면 고급 승용차들이 마을 안길을 비집고 다니고 투기꾼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려 안정이 안되기는 지정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주시청도 걱정이 여간한 게 아니다.

한 간부는 "18일 도청 발표에도 나와 있듯 고속철도역 입지에 따른 지역개발 및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연관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개발효과에 기대걸기보다는 차분히 농토를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와 '땅값도 올랐는데 농지 팔아 좀 도와달라며 행패부렸다는 얘기가 간간이 들리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건천읍 출신 한 시청 간부의 말이 화천리 일대의 멍든 농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

경주시는 고속철 경주역사 일대에 대한 개발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하지만 정임락 팀장은 "별천지가 생길 일은 없다"는 말로 섣부른 기대 심리를 차단했다.

역세권 개발은 경주시 차원을 넘어 건교부와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이 연계한 공영개발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뚜렷한 청사진조차 없다.

정 팀장은 "타당성 검토 등 기본적인 업무협의를 진행하는 수준"이라고 현재의 진척상태를 설명했다.

시의 다른 관계자도 이미 준공한 고속철 광명역과 천안 아산역이 다른 인프라와의 연계성 부족과 배후시설의 미비로 뚜렷한 공동부양 효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전례를 들어, 현지인들에게 정책의 진행방향과 속도를 봐가며 차분히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울산시는 지난 12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지난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129.26㎢ 가운데 두서면 두량리와 두동면 진천리 등 58.68㎢에 대해 허가구역 해제를 결의했다.

역세권 개발폭이 당초보다 좁혀지고 있다는 점을 실제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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