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바꿔치기, 채점자와 짜고 후한 점수 받기, 예상 답안지 미리 만들어 가기, 합격자 이름 바꿔치기…. 조선조 과거에 동원된 시험 부정 수법이다. '첨단기술'도 동원됐다. 숙종 때 성균관 근처에 사는 한 아낙은 나물을 캐다가 땅에 묻힌 노끈을 발견하고 잡아당겼다. 끈은 대나무통과 이어져 있었고 대나무통은 과거시험장인 성균관 반수당(泮水堂)으로 연결돼 있었다. 과거 응시자가 과거장에서 시험지를 노끈에 매달아 신호를 보내면 밖에 있는 자가 줄을 당겨 시험지를 확보한 뒤 답안을 작성, 노끈에 묶어 다시 과거장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실록에는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도 등장한다. 거벽(巨擘)과 사수(寫手)다. 거벽은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과거 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사람이고 사수는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다. 거벽과 사수를 고용하면 과거 응시자는 작문을 할 필요도 글씨를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지음)이란 책에 나오는 과거 부정 수법이다. 어떤가. 이번 수능시험에서 동원된 수법이 이미 조선조 때 사용된 '고전적'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차이는 동원된 첨단기기가 대나무통과 휴대전화라는 것이고 당시에는 범인을 잡지 못했으나 이번 수능시험에선 가담자들이 대거 적발됐다는 점이다.
○...과거와 수능시험 부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양반 관료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고급 관료가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거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통해야 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학벌'을 배경으로 많은 돈을 벌거나 '좋은 가문'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기를 쓰고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수능 시험부정 파문이 확산되자, 한 고교 교사는 "사람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간판이 들어서고, 인격이 바로 서야 할 자리에 외모가 들어서 있고, 용기와 양심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특권과 물질이 들어서 있다"며 세태를 개탄했다. 또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매도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점수 따기 교육만 시킨 자신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 과연 돌을 맞아야 할 사람이 교사들뿐일까.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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