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곳을 아시나요-중구 삼덕동 LP카페 골목

"세련되진 못해도 깊이가 있습니다.

"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중구 삼덕동 한 거리로 들어서면 귀에 익은 올드 팝(Old Pop)이 거리 밖으로 새어나온다.

이 거리는 LP(소위 레코드 판)를 즐겨듣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아드는 곳이다.

거리의 공식적인 이름도 없지만 미술사 카페, ACID 카페, 소설 카페가 LP의 깊은 울림으로 지나가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삼덕소방서 맞은편에 가면 분위기가 사뭇 다른 거리를 찾을 수 있다.

왁자지껄하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조용하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조금은 허름한 외양의 '미술사 까페'에 들어서면 4, 5명이 앉을 수 있는 바(Bar) 정면에 마릴린 먼로의 사진과 비틀즈 멤버들을 그린 벽화가 걸려있다.

바 안쪽 턴테이블(turntable)과 스피커 사이에 400여장의 LP와 CD 또한 400여장이 빼곡이 꽂혀있고 뒷마당 창고에도 1천여장의 LP가 잠자고 있다.

이곳에 있는 LP는 팝, 록, 재즈, 가요 등 다양하다.

가요는 대부분 80년대 나온 것들이다.

손님들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룬다.

넉넉한 몸집의 양헌규(28) 사장은 "대구의 LP 가게가 거의 사라져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거나 외국에서 주문하는 실정"이라며 "주로 Van Morrison, Tom Waits 등의 70, 80년대 록이나 John Coltrane, Sonny Rollins 등의 50, 60년대 재즈를 즐겨 튼다"고 했다.

단골손님 배문종(29)씨는 "95년 가을부터 LP를 사러 이 거리를 드나들기 시작, 어느새 이곳을 단골집으로 삼게 됐다"며 "LP는 CD에 비해 소리가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켓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하다"며 LP예찬론을 폈다.

특별히 싫어하는 음악은 없지만 이곳에서 최신가요를 듣기는 힘든 것도 또다른 특징.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이곳에서 그같은 음악을 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9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 LP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음악소리로 이내 가득찬다.

'소설 까페'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800여장의 LP를 보유하고 있다.

가요나 재즈가 그 중 60% 정도를 차지한다.

입구부터 카페 내부에는 카뮈, 카프카 등 문인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마르크스의 자본론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까지 3천여권의 책이 마련돼 있다.

이곳을 전천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전우태(30) 사장은 "손 때 묻은 책 냄새와 LP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편히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처음에는 음반가게로 시작했다는 'ACID 까페'. 조금은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가 한번쯤 눈길이 가게 한다.

이곳은 주로 Folk, Progressive, 제3세계 음악을 튼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손님들이 주류를 이룬다.

LP는 1천여장.

이 거리에 들러 세 카페를 찾는 손님들은 혼자 와서 맥주 한병 앞에 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이곳의 주인들은 "비록 손님은 적을지 몰라도 LP를 찾아 음악을 듣고 즐기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산다"며 "50대 아저씨들이 옛 추억을 회상하며 들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난 9월에는 이들 카페를 비롯, 인근 업소들이 젊은 작가들의 사진, 회화, 설치미술 작품 등을 전시한 'Out Door전'을 열기도 했다.

문화의 거리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이 거리를 자주 찾는 손명호(28)씨는 "ACID카페가 94년말부터 음반가게를 한데다 96년 여름에 'Wood Mac'이라는 음반가게가 들어서면서부터 이 거리의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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