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면 언제나 가슴이 저릿해진다. 곳곳에 남아 있는 6'25 전쟁의 상흔들. 당시의 처참하고 위급한 상황을 전해 주는 증언들이 이젠 역사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얼마나 더 기억될까? 당시 나라를 지키겠다며 기꺼이 목숨을 조국에 바친 전쟁의 영웅들. 이젠 남은 자들의 수효가 점차 줄어든다. 그들의 산 증언은 옛이야기로… 전쟁의 무용담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있다.
낙동강이 구비치는 곳. 은빛 백사장과 강물의 흐름. 주변 풍광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당시의 처참한 사연들은 뒤로 감추고 이젠 그저 고요하다. 참전용사들은 이곳을 자신들과 숨진 동료들의 넋이 스민 숭고한 성역지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일년에 한번쯤은 이곳을 다녀간다. 마치 수천만리 떨어진 대양을 떠돌다가 결국은 되돌아오는 연어들처럼.
◇6'25 상처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옛 왜관철교
왜관에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약목면을 잇는다. 6'25때 한강 다리와 꼭같은 이유로 폭파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호국의 다리'로 불린다. 왜관읍을 지나 구미방면으로 향하는 초입지점. 요즘은 4개의 다리가 서 있지만 6'25 당시엔 유일한 철교였다.
싸늘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 다리를 직접 건너 보는 것도 또 다른 멋이다. 길이 469m.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쉬엄쉬엄 걷다보면 어느새 강건너에 와 있다. 꽤 먼거리인데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중학생들과 시장을 다녀오는 주부들에겐 그다지 힘겹게 보이지 않는다. 다리 중간지점을 지나다보면 귓불이 얼얼할 정도로 강바람이 거세진다. 그래도 다리 아래엔 단골 낚시꾼들 4,5명이 진을 치고 있다. 60대의 낚시꾼은 팔뚝만한 잉어가 하루에 한두마리씩 잡힌다고 자랑이다.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물 위엔 원앙새 10여 마리가 먹이를 찾으며 다정하게 노닐며 평화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다리난간 곳곳엔 6'25 당시의 상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리를 지탱하는 두꺼운 철판들이 마치 양철 조각처럼 심하게 휘었다. 다리 위에 설치한 철골조 '트러스트'에도 수박만한 구멍이 뻥 뚫려 하늘이 쳐다보인다. 그 상처들은 50년을 넘게 버텨오고 있다.
철도청에서는 한때 철거를 검토했으나 "호국의 상흔을 간직한 이 다리를 보존하자"는 칠곡군민들의 의견을 수렴, 지난 1993년에 복구하여 '호국의 다리'로 이름지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도로 활용되고 있다.
◇다부동 전투현장 -유학산 전투
다부동 전투는 대구방어의 가장 중요한 전투적 요충지였다. 다부동에서 석적면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동네 곳곳에 ○○○고지, ○○○고지 란 이색 팻말들이 눈에 띈다. 부근 모든 곳이 전쟁터였다는 이야기다. 전쟁의 중심지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중앙고속도로 다부IC를 내려서면 곧장 전적기념관을 만난다.
광장에는 탱크와 비행기가 전시돼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고, 탱크모양을 본뜬 전시관은 장엄한 모습으로 유학산을 바라보고 있다. 안에는 6'25 당시의 전시상황과 직접 사용한 중화기와 소총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조지훈 시인의 '다부원에서'란 시비와 구국용사 충혼비 등 다부동 전투에 참가했던 전우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가 서 있다. 매년 학생,군인 등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다녀간다. 몇 가족들이 어울려 단체로 현장을 둘러보려면 미리 사무실에 연락하면 한국자유총연맹 경북도지회에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당시 전쟁상황을 비디오로 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
맞 편 유학산은 동족상잔의 참화가 곳곳에 서려 있다. 산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유학산 6'25 격전지 순례 탐사로를 경험하면 훌륭한 산 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유학산 격전지 탐사로 길이는 6'25를 본떠 625m로 조성했다. 탐사코스는 팥재주차장-도봉사-팔각정-674고지-다부동 전적기념관 코스가 비교적 완만하다. 839고지인 팔각정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당시 북한군이 쳐내려오던 코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탐사를 마친 뒤 인근 도개온천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하는 것도 좋다.
◇왜관 전적기념관
왜관에서 구미 3공단 방면으로 가다 보면 석적면 중지리 도로 옆에 선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을 볼 수 있다. 왜관철교 폭파 당시 인근 자고산 전투 등 치열한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한 곳이다. 다부동 전적기념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6'25 참전용사 충훈비와 UN군 왜관전승비, 왜관지구 전적비가 있다. 이처럼 칠곡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정작 대구'경북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소중한 곳으로 비쳐지지 않는 듯하다. 대구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젠 점차 뇌리에서 잊어져 가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녀들의 역사공부를 위한 교육 나들이로서는 적격지다. 과거를 잊는 자는 반드시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우리는 혹여 잊은 것은 아닐까. 내일을 위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왜관읍에 위치한 구상문학관을 둘러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최근 작고한 구상 시인의 숨소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중앙고속도로 다부 IC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100m지점에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만난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둘러보고 유학산 6.25 격전지 순례를 원하면 맞은 편에 위치한 탐사로 안내도를 참고한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곧장 올라갈 수도 있지만, 왜관방면으로 1km 가다보면 학산지를 지나 학산1리(듬티마을)에서 오른쪽 석적방면으로 접어들면 팥재주차장을 만난다. 이곳에 차를 두고 도봉사로 오르면 곧장 헬기장과 839고지 팔각정에 오를 수 있다. 유학산 격전지는 2시간반-3시간 코스.
●호국의 다리는 왜관읍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왜관IC에서 내려 왜관읍을 지나 국도4호선을 약목-구미 방면으로 가면 왜관읍을 벗어나기전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낙동강 구철교 '호국의 다리'를 만날 수 있다. 호국의 다리에서 석적방면으로 2km 가다보면 도로 변에 왜관전적기념관이 있다. 호국의 다리에서 왜관읍내에 있는 구상문학관을 들러 보는 것도 좋다.
●구상문학관
우리나라 문단의 거목 구상시인의 삶과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구상문학관이 2년전 칠곡군 왜관읍에 문을 열었다. 구상문학관에는 시인의 작품들은 물론 시인이 기증한 2만여권의 책과 이중섭 화가 등 지인들과의 만남을 알 수 있는 사진과 기록 등 시인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도개온천을 지나 왜관읍으로 오는길에 오리전문 식당인 '이조명가'에는 독특한 오리고기를 선보인다. 독립투사 채충식 선생의 손녀인 채영희씨가 경영하며 주변경관이 독특하고 깔끔한 음식솜씨로 소문나 단골손님이 많다. 예약필수 054)974-5289.
낙동강 호국의 다리를 건너면 왼쪽편(약목면 관호리)에 메기매운탕 전문인 '첫집매운탕'이 있다. 간판은 허름하지만 주인 이옥분 할머니의 걸쭉한 욕담은 낙동강 철교의 역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054)974-1963. 보신탕은 지천 역전의 역전식당(053-313-4294)이 유명하고 왜관역앞 고궁순대(054-974-0055)도 왜관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사진: 6'25때 폭파당한 구 왜관철교. 가슴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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