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여 남은 2004년은 유난히 힘겹고 고단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을 개척해가는 사람은 바람에 날려다니다가 흙에 닿기만 하면 생명을 잉태하는 풀씨와 같이 귀한 존재이다. 여협이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세계를 이끌 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된 (주)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대표도 풀씨처럼 희망을 나르는 존재이다.
◆삶과 사업이 항상 매끄럽지는 않아
"친정 어머니가 사업도 반대하셨지만 특히 해외 유명 브랜드를 가져와서 판다는 데 대해서 정말 노발대발하셨어요."
김성주 사장이 연세대를 거쳐 런던과 뉴욕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 백화점에서 실무를 경험한 뒤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판매하겠다고 하자 친정어머니(여귀옥씨:향토연고기업 대성산업 창업주 고 김수근의 부인)는 대로했다.
해방 이후 사오십 년간 국산품 애용과 금주 금연을 포함한 기독교 절제운동을 펼쳤던 어머니가 "값비싼 소비재를 수입하는 일이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며 질책을 가했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언젠가 내 손으로 꼭 나라에 보탬이 될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유럽 명품 수입을 시작한 김 사장은 이제 독일산 명품 MCM 핸드백을 국내에서 제조하여 수출한다.
◆세계적인 핸드백 국내에서 제조
경기활황과 함께 해외 유명브랜드의 수입과 유통업은 97년 말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IMF로 이자율이 뛰어오르면서 큰 위기가 닥쳤다. "김성주는 끝났다"는 악성루머도 만연했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큰 이익을 내던 브랜드를 팔았다. 접대와 뇌물이 판을 치던 업계의 관행을 뿌리치고 투명하고 정직한 영업을 지향한 김 대표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 상대방이 '기적의 딜'이라고 할 만큼 높은 액수를 쳐주었다. 재정에 숨통이 트이자 김 사장은 IMF 이후 남들이 포기하는 제조업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독일의 세계적인 가죽브랜드인 MCM 핸드백의 미국진출을 성공시킴으로써 MCM의 글로벌파트너십을 확보했던 김 사장은 "MCM 핸드백을 한국에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당장 독일 근로자들이 대규모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 "MCM사의 코어(core·핵심) 상품인 핸드백을 '카피 천국'인 한국에서 만들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였다.
◆미용성형이 아니라 실력을 수술하라.
"제 전략을 다 설명하고 난 뒤 MCM 대표의 신임을 얻었죠. 그래서 한국산 자카드를 활용해서 여행가방을 생산했는데, 세계시장에서 빅히트를 친 겁니다. 이제는 세계 30~40개국으로 역수출되고 있죠."
김 사장은 사업을 결정할 때는 신중하지만 확신이 서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single mind) 추진력을 지녔다. 게다가 부모나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혜택 이상을 환원하겠다는 '청지기' 정신까지 지녔다.
"21세기 지식산업의 핵심은 브레인이며, 그 브레인 역할을 여성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김 사장은 "다혈질적이고 보수적인 대구에서 여성이 자리잡기는 어렵지만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깨어서 글로벌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들은 얼짱을 위한 성형수술이 아니라 실력수술부터 하라고 말한다. 영어와 인터넷만 잘하면 사업의 기반을 반 이상 닦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대구섬유 글로벌 전략 짜야
그 자신이 자녀를 키우면서 분초를 다투었고, 딸 지혜가 어린 시절 화상을 당해 중환자실에서 4개월을 살았던 고통을 겪었던 김 사장은 대구지하철 참사 여성 화상 희생자를 위한 기금(2천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으며, 대구에 대한 속정도 깊다.
"섬유가 다시 대구의 희망으로 부활하려면 글로벌화 전략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사실 세계 4대 패션도시 가운데 런던은 영감(inspiration)으로, 파리는 마케팅전략과 브랜드로, 밀라노는 창조적인 섬유생산으로, 뉴욕이 소매업을 포함한 유통망으로 그 명성을 얻었다.
"대구는 아시아 지역에서 따라올 수 없는 고부가가치의 섬유를 생산하고, 또한 동아시아지역의 소비시장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글로벌 패션맵(global fashion map)'을 그려야 합니다."
◆글로벌 시대 정부에 연연할 필요 없어
"대구시민은 패션안목도 높고 고부가 섬유를 생산할 능력도 가졌어요."
국제적인 패션유통 수출가인 김 사장은 지역의 앞선 IT, 나노, 바이오 기술을 섬유와 융합시켜 신제품을 만들고, 이 신제품을 대구전시컨벤션센터 등을 활용해서 전시하며, e커머스 기법을 통해 전 세계로 마케팅한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섬유도시로서의 이정표를 꽂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한국처럼 우수한 두뇌로 축복받은 나라가 없어요. 반만년 동안 800번 이상 침략을 당해도 정통성을 지켜오고, 채 50년도 안 된 개발기간 동안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잖아요. 이제 더 이상 패배의식이나 두려움은 떨쳐야해요."
글로벌시대에 더 이상 정부나 지도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그는 "이제야말로 각개전투의 시대"라며 나부터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단 하루, 단 일 분도 허비하지 말고 뛰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퇴하고 북한에서 선교사로 봉사할 것
"대구섬유 및 아시아의 좋은 섬유를 활용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앞으로 세계 패션과 미의 가치기준을 서구(western) 중심에서 아시안적인 것으로 반드시 돌려놓겠다는 그는 한국의 딸들이 지닌 아시안적인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놓고 은퇴할 계획이다. 은퇴를 해서는 공부도 더하고, 음식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북한에서 선교사로 봉사할 생각이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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