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고(50)씨는 가난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이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란다.
그리고 자신처럼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아빠, 힘내세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마음속으로 운다고 했다.
'이웃사랑' 취재진이 의아했던 것은 이렇게 힘든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가족의 여유였다.
아픔만큼 행복해질(?) 수 있구나. 애들 앞에서만은, 부모님 앞에서만은 절대 눈물을 보일 수 없다는 각오가 단단히 선 듯 했다.
이들은 대구시 남구 대명동 어느 주택의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딸은 시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다섯살 때 칡뿌리를 캐기 위해 산비탈을 오르다 앞서가던 친구가 헛디딘 돌에 맞아 왼쪽 눈을 맞았어요. 어머니는 퉁퉁 부어오른 제 눈덩이에 된장을 발라주셨죠. 그 후로 한쪽 눈이 실명됐어요. 오른쪽도 점점 보이지 않더니…."
시각장애 1급인 이씨는 안방 윗목에 앉아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어떤 움직임이든 알아내고 싶은 듯 처절하게 천장만 바라보면서 훌쩍였지만 눈물을 보이진 않았다.
그는 눈물샘이 없다.
"4년 전 경산쪽으로 출근하다 길을 잃었지요.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니 세상이 까만색이 돼 버리더군요. 벽에 기대서 원없이 실컷 울었습니다.
"
그는 전화를 받고 맨발로 뛰어나온 아내(44)를 부둥켜 안고 '이제 이 세상을 어떻게 사냐'며 고통스럽게 울었다고 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명(失明)이 아이들에게 유전돼 버린 것.
충북 영동대 초등특수교육학과에 다니는 큰 딸 지현(19)양은 벌써 시각장애 2급. 아빠처럼 다섯살 때 친구들과 놀다 한 친구가 가뜩이나 약한 시신경을 건드렸다.
곧 왼쪽 눈을 잃었고 지금은 한쪽 눈에만 의지하고 있다.
시력도 잃어가고 있다.
"저는 볼 수 없는 아픔만 짊어지고 살지만 우리 아빤 볼 수 없는 눈을 물려줬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살잖아요. 이제 우리 아빠 그만 슬펐으면 좋겠어요."
지현이는 옆에 앉아 있는 아빠의 손을 꼭 잡아줬다.
까까머리를 한 막내 덕현(13)이도 태어난지 5개월만에 '사시(斜視)'가 됐고 왼쪽 눈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에 수술을 했다.
둘째 정은(16·여)양은 다행히 아직까지 이상이 없다.
문제는 이제 가족들의 가장 노릇을 해야할 어머니 전명순(45)씨마저 희귀질병에 걸린 것.
전씨는 4년 전부터 '담도폐쇄증'을 앓고 있다.
남편이 눈을 잃었다는 슬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일까. 간외담도가 폐쇄돼 담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간에 손상을 줘 황달이 생기고 하얀 변이 나오는 질환이다.
간경화로 진행되고 있다.
병의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애들에게,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요. 저라도 건강해야지 먹고 살 걱정을 덜수 있는데…."
전씨는 금세 눈물방울이 맺혔지만 애들이 볼까 두려워 서둘러 옷소매로 훔쳐냈다.
가족 모두가 장애와 질병을 앓아 수입이 전혀 없는 이 가족은 국민기초수급대상으로 정부지원금 70여만원이 생활비의 전부. 아빠는 '안마'를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지난해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현이는 특수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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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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