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暴雪에 죽든 말든

'행정도시 특별법'에 결사 반대했던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충정권의 1백만표는 잃어버리는 대신 수도권에서 8백만표를 얻게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서울을 지역구로 한 야당 의원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거두절미하고 재'보선이든 대선이든 '선거 논리'에만 집착, 야박하게 표계산부터 한 것이 과연 명색 국회의원이 취할 언사일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 충청권의 행정수도 이전문제는 지난 대선(大選)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공약을 내건 것이고 결국 당선됐으니 선거공약을 이행하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그 공약을 내걸땐 그야말로 '이회창 대세론'에 밀려 얼떨결에 내놓았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게 위헌(違憲)결정난 이후부터 사실 좀 심각하게 돼버렸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정국으로 치달으면서 여권이 충청권의 민심마저 잃는다면 재'보선도, 지방선거도, 더 멀게는 정권재창출마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위기국면이었던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온게 위헌소지를 없애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묘책이 바로 청와대를 제외한 정부부처만 이전하는 이른바 '행정 복합 도시'조성이고 이게 결실을 맺은 것이다.

과천정부제2종합 청사의 선례도 있었던 만큼 큰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태도에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정부 부처만 충청권으로 갔다고 해서 과연 능사인가 하는 문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요 국무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할려면 대통령이 일일이 충청도로 가든지 국무위원들이 서울의 청와대로 와야한다. 결국 그 불편을 해소하는 방안은 충청권에 '제2청와대'나 '청와대 별관'을 두는게 아마 최적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실상 '행정수도'가 돼버리는 것이다.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의 탄핵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헌재(憲裁)의 위헌결정까지 받아낸 한나라당 입장에선 당연히 그 변칙이라 할 수 있는 '행정도시특별법'도 반대하는게 앞뒤논리에 닿는, 공당(公黨)의 태도라 할 수 있다. '탄핵역풍'에 국회의석을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잃었고 충청권의 민심을 외면하곤 종국적으로 정권탈환이 어렵다는 계산아래 본심은 접어둔채 '행정도시법안'을 어정쩡한 태도로 쫓아간 게 속내가 아니었나 싶다. 이 우려가 지금 한나라당이 극심한 내홍에 직면한 작금의 상황이다. '모'아니면 '도'라고 했다. 또 야당이면 야당답게 설사 차기 대선에서 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논리에 모순되는 행적으론 야당의 존립근거까지 위협을 받는다.

이런 취지에서 한나라당은 근원적으로 사고를 바꿔야 한다. '디지털문화'에 좀 어둔하다고 해서, 젊은층에 인기가 없는 보수성향이라고 그 틀을 바꾸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당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소리'를 할때에야 비로소 존립의 근거가 있다. 또 그게 정권을 감시하는 야당의 아킬레스건이자 국민들에게 '야당의 양식'을 각인시켜주는 근원임을 뒤늦게나마 뼈저리게 새겨야할것이다. 그런데 여권엔 과연 문제가 없나 하는점이다.

이 특별법이 담고 있는 근원은 '서울의 과포화'해소에 있다. 약 30년후의 도시기능이나 엄청난 예산조달 문제등은 차치해두자. 당장 이 법이 통과되자 정부제2청사가 있는 인구7만의 과천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이번엔 점차 서울의 민심이 흉흉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를 무마하느라 서울공항이전등 각종개발계획을 쏟아내놓고 있다. 심지어 서울의 대학 증원에다 지방대의 서울진출까지 들고나오는 판국이다. 물론 명분은 국제경제중심도시로 키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부처중 경제관련부처나 그 외곽기관은 서울에 둬야 앞뒤가 맞는 얘기이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될 판국아닌가. 결국 이재오 의원의 표계산이 결코 허황된 소리만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러니 '선거망국론'이 나올만도 한 작금의 우리 정치상황이다. 이러는 통에 동해안에 1백년만의 폭설로 야단법석이었지만 정부의 그 누구도 한마디 우려하는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어느 장애인부부가 평생의 재산인 비닐하우스를 폭설에 잃고 절규하는 소리마저 들릴턱이 없다. 만약 수도권이나 충청권에서 이런 대란(大亂)이 났다면 장관, 국회의원 나들이가 줄을 잇고 지원대책이 쏟아졌을 것이다. 국정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짖는 개를 돌본다'는 옛말이 참으로 실감난다.

朴昌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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