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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파출소 점거 "오죽하면 이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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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내 대신소방파출소. 이곳을 점거하고 있던 10여 명의 상인들은 "오죽하면 이러겠냐"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우리를 아무도 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자신들의 입장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재 이후 줄곧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는 박윤기(50) 씨.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잡혔으면 소방관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서 빨리 진화작업을 마쳐야죠. 이건 모닥불을 대형화재로 키운 겁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우리가 직접 들어가 끄려고 했겠습니까?"

그는 경찰들이 막지 않았다면 불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청춘을 바쳐 30년을 함께 한 일터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채 말을 맺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또 다른 피해상인 이상백(54) 씨. 소방파출소 점거에 나선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하도 소리를 질러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 정도 불도 못 막을 거면, 뭐 하러 소방파출소를 시장 옆에 두나요. 건물 벽에다 물을 뿌린다고 불이 꺼집니까. 지금쯤이면 소방책임자가 나와 제대로 불을 못 끈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돼요. 일터를 잃어버리고 밖으로 내팽개쳐진 수천 명 상인들은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밤을 지새우고 있는 상인들이 안쓰럽지도 않습니까." 그는 이제 소리지를 힘도 없다고 했다.

서문시장 내 다른 지구 상인들의 이해를 호소하는 김성택(63) 씨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이번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지지만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지구 상인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주차빌딩에 점포를 차릴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는 다 같은 서문시장 상인 아닙니까.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지요. 우리도 살아야죠."

불이 지나간 자리. 피해 상인들의 눈물과 분노, 허탈함은 잿더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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