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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로 승부…수도권 학생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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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사례는 멀리 있지 않았다. 대구에서 자동차로 1, 2시간 거리에 있는 포항 한동대와 진주 경상대는 수도권 대학을 훨씬 앞서는 경쟁력을 키워냈다. '성공한 대학'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리더십 있는 총장과, 선택과 집중식 경영 방침이 발견됐다.

한동대는 1995년 개교 때부터 운영한 '기계금속학군'을 작년 초 '기계제어공학부'로 변경했다. 금속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인기가 시들해진 반면 기계와 전산제어 인력의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구의 대학들처럼 단순히 '문패'만 고쳐 단 것이 아니다. 교무처 직원은 "당시 금속 전공 교수 2명이 퇴직했다. 신입 교수들은 학생을 붙잡기 위해 교과 연구와 홍보에 안간힘을 쏟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00년 90명까지 떨어졌던 이 학부 전체 재학생(2~4학년)수는 올해 150여 명으로 늘었다.

◆학생은 고객이다-한동대

지난 9일 오후 한동대 도서관에서 만난 김세훈(27·언론정보학부 4학년) 씨. 김씨는 "입학 당시에 서강대, 한양대를 같이 놓고 고민하다 2학년에 올라가서 전공을 택할 수 있고 인성을 중시하는 학풍에 끌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동대의 학제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열외로 둘 정도로 독특하다.가장 눈에 띄는 것이 '무 전공 무 학부' 입학 제도. 한동대 학생들은 계열·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 2학년 때 자신이 원하는 학부를 선택할 수 있다.

4학년인 김정수(26) 씨는 2학년 2학기 때 국제어문학부에서 전자전산학부로 '전공'을 옮겼다. "문과 출신이라 당연히 문과 학부로 갔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교수님과 의논 끝에 이공계를 택했지요."

전공 변경에 성적·정원의 제약도 없다. 그러나 어학능력, 학점 등 졸업조건이 까다로워 매년 4학년의 50% 안팎만 졸업하는 것에서 보듯 학생들이 게으름을 피울 여지가 없다.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다 보니 학생이 덜 찾는 학부 교수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매년 11월 말이 되면 교수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1학년을 상대로 홍보 설명회를 열 정도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한동대는 전체 10개 학부에 700~800명(정시 380여 명)의 신입생 정원을 1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김영길 총장은 "학생 수를 늘리면 등록금 수입은 늘겠지만 그래서는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타 대학들이 몸집을 불리는 동안 정반대로 내실을 다져온 것이다.

자연스레 인재가 몰리게 되는 이유다.

관계자는 "지난해 한동대 입학생 성적이 성균관대 법대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올해도 평균 2등급, 인문계 기준 상위 6% 수준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포항 변두리에 있는 대학이지만 지난해 전체 신입생의 34%가 서울·경기지역 학생들이었다. 지난 2003, 2004년 삼성·LG계열사 취업률은 전체 취업자의 41%나 됐다.

◆ 선택과 집중이 살길이다-경상대

지방 국립대학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의지만 있으면 관료주의나 경직성을 없애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경쟁력 강화 보고회'의 주인공은 단연 진주 경상대학교였다. 경상대 생명과학분야는 2004년 과학기술부가 지정한 국가핵심연구센터에 서울대와 함께 선정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진주 농과대에서 출발한 경상대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서부 경남은 공업 기반이 없는 대신 약용식물 등 농업을 중시합니다. 농업생명과학 분야를 특화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이상열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 83년 현 조무제 총장이 국내 최초의 유전공학연구소를 설립했을 때부터 '선택과 집중'이 시작됐다고 했다. 12개 단과대학 중 5개를 식물생명과학 관련 대학으로 확보하고 관련 전공 교수 30여 명을 확보했다. 국립대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 조교수에서 부교수가 될 때 영향력 지수 7이상, 부교수가 교수로 재임용시는 영향력 10이상 학술지에 논문 게재 실적이 있어야 한다. 기획처 관계자는 "임용됐다고 해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높은 연구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셀, 네이처, 사이언스 등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1천만 원을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제도 도입됐다. 이 결과로 이들 학술지에 7편의 논문이 게재돼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생명과학부는 지난해 19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학생들도 몰리고 있다. 김스잔나(22·생명과학부 4학년) 씨는 "교수님들이 열심히 하시기 때문에 학생들도 성취의욕이 높다"고 했다.

◆ 대학 운영자 의지가 관건

조무제 총장은 "한정된 자원으로 대학 전체가 발전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특성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성원 간의 갈등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대학 운영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회 평가지원부 백정하 연구원은 "국·사립을 떠나 교수·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갈지는 전적으로 총장의 역할"이라며 "경북대, 영남대 등은 후발 대학들에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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