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람의 과정

새해 들고 종합병원 출입을 할 일이 네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늦둥이를 출산한 친구를 만나러, 한 번은 최근에 내 몸이 겪고 있는 모종의 갱년기 증상에 대한 검사를 받으러, 한 번은 수술을 받고 입원한 선배 문병을 하러, 마지막 한 번은 아는 댁 어르신이 별세하여 문상을 하러 갔다. 네 번째로 병원에 다녀오던 날 문득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뇌리를 스친 생각은, 그 보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인간 생로병사의 현장을 모두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아흔이 가까운 연세로 큰 병고 없이 비교적 평온한 상태에서 가신 어르신의 작고는 흔히 호상이라고들 부르는 그런 경우여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고, 또 나 자신의 늙어감을 의료적으로 확인한 몇 가지 검사는 약간 불안하긴 했으나 개선처방이 주어질 거라는 기대로 낙관의 여지가 있었다. 황당하면서도 자꾸만 입이 벌어지게 즐거운 것은 쉰의 나이로 딸 쌍둥이를 낳은 친구의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직장 여성인 그녀는 이제 어떻게 그 핏덩이들을 길러 낼지 걱정이 태산 같으면서도 제왕절개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몸을 힘겹게 추스려 기어코 아기들에게 초유를 먹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잔다르크와 마돈나를 합쳐놓은 듯 신성한 에너지가 넘쳤다.

감정적으로 가장 휘둘렸던 방문은 병상의 문단 선배를 찾았을 때였다. 간암 환자인 그는 지난 한 해동안만 네 번이나 받은 항암시술을 또다시 받고 누워 있다가 문병객을 보자 쉼없이 치솟는 구토증에도 연방 웃어 보였는데, 그때 그 표정이 그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다 갈파하지 못한 인간 삶의 어떤 비의(秘意)를 말하고 있는 듯하여 위로랍시고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중에도 속으론 숙연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다. 고통을 참느라고 새하얗게 질린 창백하고 여윈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열정으로 펄펄 살아 검게 불타는 눈빛에서 생로병사를 이미 내면에서 수없이 겪어내고 또다시 새롭게 출발하려는 역전(歷戰)의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퇴원한 그는 함께 활동하는 문학동인모임 홈페이지에 새 작품을 하나 완성해 올림으로써 출생신고를 또다시 갱신하였다.

그렇구나! 나는 마음으로 무릎을 탁 쳤다. 사람은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동시진행할 수 있는 존재이구나! 마치 병의 절정에 이른 그 선배가 순간순간 아프고 늙고 죽고 또다시 태어나고 하는 것처럼. 그러니 생 · 노 · 병 · 사, 그 어느 것 하나 삶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구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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