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쌀 좀 파세요!" "미국의 쌀도 사세요!"
1980년 냉해와 대흉작으로 바로 우리 정부 관료들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쌀 확보전에 나서면서 겪었던 애환들은 적잖다. 농림부나 농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국민들이라면 1980년 냉해를 잊지 못한다. 특히 쌀 관련 업무를 봤던 공직자들 경우, 부족한 쌀을 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약자의 설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경북도청 한 농업직 공무원은 "그때 냉해에 따른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은 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요즘 세대는 이를 기억조차 못하니 안타깝다."고 한숨이다.
◆그 때를 아십니까.
지난 1980년 냉해로 흉년이 들어 쌀 부족 사태를 빚자 이듬해 정부는 미국·일본 등 11개국가에서 총 224만 5천t의 쌀을 긴급 수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쌀수입에 관여했던 농림부의 전직 한 고위간부의 '괴로운 회상'은 '우리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 무렵 일본에는 재고미가 많이 남아돌아 생산비 보다 크게 못미친 가격에 한국에 팔기로 양 정부 간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쌀은 국제 쌀시장에서 구입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미국의 쌀 수출업자들이 통상규칙을 들며 의의를 제기했지요. 결국 우리 정부는 미국 쌀도 사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비용 차원에서 보면 일본에서 쌀을 수입하는 것이 재정부담을 덜 수 있었으나 그 당시 우리 입장으로서는 미국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 탓에 일본 보다 크게 비싼 가격을 주고 미국 쌀을 들여와야만 했습니다."
그의 증언은 미리 준비하지 못한 '식량 안보'에 대한 회환으로 들렸다.
"1979년 국제시장에서의 쌀 가격은 톤당 300달러를 조금 넘었으나 흉년으로 쌀을 수입할 무렵인 1980년 당시에는 쌀값이 500달러 이상 껑충 뛰어올라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됐습니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11개 쌀 수출국과 향후 수년 간 쌀을 수입하겠다고 계약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수입쌀이 재고로 남아 정부가 수입쌀 재고처리를 두고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는 말이 시중에 떠돌기도 했습니다."
냉해와 관련, 미국 정부의 미국쌀 수입에 대한 압박 증언과 함께 우리 정부관료들이 미국정부에 쌀을 공급해 줄 것을 간청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들 사연들은 지금도 농림부와 농민단체 내에서는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마다 회자되고 있다.
◆위태로운 식량자급의 현주소
우리 식탁은 이미 수입 농산물로 점령된지 오래다. 단지 쌀과 보리 정도가 우리손으로 생산해 공급이 이뤄질 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곡물수급 동향과 전망을 보면 쌀, 맥류, 옥수수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04년 현재 27.1%, 여기에 대두를 포함한 식량 자급률은 25.3%, 그리고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2.6%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1년동안 소비하는 식량 가운데서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더구나 쌀 이외의 식량 수입의존도는 97.4%에 달해 향후 수입의존도는 더욱 높아져 가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밀의 경우 2004년 국내 소비량은 316만 t. 빵과 국수소비가 늘면서 쌀 소비량 472만 t의 67%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밀 생산량은 ?만t에 불과, 자급률은 1%에도 못 미치는 겨우 0.4%에 그치고 있다.
또한 밀보다 배가 넘는 900만 4천t(2003년 기준)의 소비량을 보이는 옥수수 경우 국내 생산량은 7만 3천t에 불과해 자급률이 0.8%에 이르고 참기름(20.6%)과 팥(18.2%) 등도 자급률이 극히 낮은 상황이다. 심지어 각종 산나물의 자급률도 42.8%로 절반에 못 미친다.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생선류 경우 명태는 4.9%, 조기는 29.2%만 우리 바다에서 잡혀 명태는 러시아에서, 조기는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된다. 쇠고기 역시 자급률도 30~40선에 그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태곤 연구위원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시장개방과 농업보호 감축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자급률 하락은 국민주식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의 자급률이 우리 국민이 장기적으로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 적정생산 수준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최재관(40) 정책위원장은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일어날 경우 우리나라 같이 식량 자급률이 극히 낮은 나라는 식량 대란이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최 위원장은 "특히 쌀 경우 이미 지난해 수확기 파동으로 20%가 폭락한 상태에서 밥쌀용 쌀이 국내에 시판될 경우 식량안보 측면에서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불안한 국제 쌀 시장
세계 쌀시장은 여러가지 불안요인을 많다.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른 예상치 못한 쌀 흉작이나 국제 정치상황 변화에 따른 수급차질 우려 등으로 국제 쌀시장 위협요소는 상존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태곤 연구위원은 "세계 곡물시장은 소규모 시장인 동시에, 소수 수출국과 다수 수입국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더구나 중국과 일본 같은 곡물의 대량 수입국이 위치한 동북아에서 불안요인이 잠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농경원이 최근 2005년 발표한 세계 주요 쌀 수출국의 수급 및 가격동향에 따르면 2005/2006년 세계 쌀 생산량은 4억 687만 6천t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2002/2003년도 작황부진 및 꾸준한 소비량 증가로 쌀 재고율(6천 610만 3천t)은 16%로 하락할 전망인데 이는 1982/1983년 이후 최저 수준이라는 것. 재고량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재고량의 약 50∼60%를 차지하는 중국의 쌀 재고량이 줄었기 때문.
2005/2006년도 중국의 재고량은 2천 7백만t으로 전년 보다 23%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00년 이후 높은 경제성장률이 지속되면서 쌀 수확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 2003년 흉작과 소비량 증가로 재고량이 크게 줄어 들었다. 따라서 2005/2006년 재고량은 1999/2000년 보다 72%가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역시 2004/2005년 재고량은 120만t로 늘다 2005/2006년도 수출량이 380만t으로 확대되면서 재고량은 84만t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 쌀과 같은 중단립종의 자포니카 쌀을 생산하는 중국이나 미국에 우리 식량을 의존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늘 상존, 불안한 상황이며 국제 쌀가격의 상승도 국가적으로 부담스런 요인이 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혜영 연구위원은 "세계 쌀시장의 수급 불안 속에서 국제가격은 최근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2005/2006년도 생산량이 증가될 전망을 보이고 있으나, 재고량이 매우 적어 가격은 계속 상승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인열기자 oxen@msnet.co.kr 군위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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