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황사가 앞을 가린다. 하필이면 오늘이람. 하지만 어찌하랴. 흥겨운 태평소 장단에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것을.
백정·할미·파계승에 이어 초랭이와 바보 이매가 등장하자 야외공연장은 폭소 도가니. "하하하." "깔깔깔." "호호호." 나들이나온 김에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주느라 공연은 뒷전이던 김경원(41) 씨도 끝내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찬 양반마당이 끝나자 모두 한데 어울려 신명나는 춤판을 벌인다. 덩 덩 덩더꿍 어~얼 쑤! 노란머리 외국인도, 코흘리개 꼬마도, 점잔 빼던 아저씨도,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도. 너 나가 따로 없다.
따스한 봄볕 아래 한바퀴 마을을 둘러본 뒤라 저녁식사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요즘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채소로만 가득 채워진 헛제사밥이지만 스파게티, 피자에 비할 게 아니다.
농협 구미교육원 김민구 교수의 재치있는 진행 아래 '목석원'에서 이어진 레크리에이션 시간은 아이들 세상이다. 막내인 김세현(4·대구 수성구 신매동)이는 작은(?) 키로 림보게임에서 맹활약했지만 정작 가위바위보에서 져 선물을 받지못하자 눈물이 글썽글썽.
낮에 파계승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김종흥(55) 씨의 탈춤 강습이 이어지자 낯선이들과 어색해하던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저마다 맘에 드는 탈을 하나씩 쓰고 엉둥이는 씰룩씰룩, 팔은 훠이~훠이~.
"우리 것을 뻔한 이야기로만 생각하던 무지가 부끄럽다"는 박해식(42·여)씨는 이매가 되어 비틀비틀. 우연히 합류한 일본 주부관광객 구보 에츠코(50), 도이 마사코(55) 씨도 초랭이가 돼 덩실덩실. 마당을 가득 메운 장승들이 빙그레 웃는다.
아직은 쌀쌀한 산바람도 장작더미의 불꽃에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모두들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들고 정을 나눈다. 코와 혀를 유혹하며 화로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간고등어와 감자에 동동주 한 잔..... 화려한 꼬리를 남기며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 아래 하회의 봄 밤은 아쉽게 깊어간다.
닭 홰치는 소리에 깨어 툇마루에 서 내다 본 마을의 아침 풍경은 고요하다. 전날 떠들석하던 마을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밤새 추적추적 내린 봄비에 목련꽃잎은 떨어졌지만 모두들 새벽 정취를 느끼느라 부산을 떤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이번엔 장승깎기 도전. 그네를 타던 아이들도 '새 장난감' 망치와 끌을 하나씩 쥐고 소나무 앞에 모여든다. "에헴! 진정한 예술혼을 보여주겠노라," 모두들 힘찬 망치질. 하지만 끌 대신 애꿎은 손등만 아프다.
오색 천을 묶은 솟대를 마당 귀퉁이에 세우면서 저마다 소원을 빈다. 김승주(12)는 용돈을 올려달라고 빌고 김은지(11)는 비밀이란다. 하지만 훗날 다시 찾을 때 솟대는 2006년 어느 봄날의 추억을 다시 들려주리라.
터덜터덜 비포장길을 10분쯤 달려 찾아간 병산서원(사적 제260호) 앞에선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연(38·여) 씨는 "멋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 미처 몰랐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참가신청을 하려고 밤잠까지 설쳤다는 정미숙(38·여), 이영희(40·여) 씨도 가족들과 멋지게 포즈를 잡는다.
"서원 앞 낙동강을 굽어보는 병산 봉우리가 몇 개인 지 잘 살펴보세요." 문화유사해설사 김귀화(47·여) 씨의 자상한 해설에 귀기울이는 표정들은 모두들 옛 선비마냥 시라도 한 수 읇을 듯 하다. '600년을 지켜온 만대루야! 내가 다시 왔다!'
금방 밭에서 수확한 딸기를 한아름씩 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는 올 때보다 더 큰 설레임이 가득 하다. "그래, 우리 것이 멋있는 거지. 얼마나 여유로운가 말이야. 그런데 언제 다시 오면 좋을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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